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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놀아라, 놀이터 바깥에서

등록 2019-01-11 06:00수정 2019-01-11 19:39

일본의 들뢰즈 철학 전문가 에가와
들뢰즈 ‘선험적 경험론’ 선구적 논의
기존의 틀 벗어난 창조적 철학 탐구
“들뢰즈 철학 독창적 계승” 평 들어
존재와 차이-들뢰즈의 선험적 경험론
에가와 다카오 지음, 이규원 옮김/그린비·2만5000원

다른 철학자의 사상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것은 결국 그를 거름 삼아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철학을 하기 위함이다. 일본에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가 1970년대 초반부터 소개됐지만, 30여년간 도식적이고 단편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출간된 에가와 다카오의 <존재와 차이>는 비로소 들뢰즈의 사상을 소화해 독창적인 철학을 펼친 책으로 평가받는다. 번역자인 이규원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원은 “이 저작은 일본에 들뢰즈가 소개된 지 30년 만에 출현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들뢰즈 철학 연구서이자 들뢰즈 철학을 독창적으로 계승한 에가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이라고 말했다.

서문에서 에가와는 이 책의 과제를 “‘반-효과화’론의 관점에서 들뢰즈의 ‘선험적 경험론’과 ‘존재의 일의성’을 종합한 하나의 ‘에티카’ 형성하기”라고 밝힌다. 여기서 말하는 ‘선험적 경험론’은 들뢰즈의 철학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는데, 우리의 경험을 조건짓는 선험을 드러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선험의 테두리를 넘어가면서 우리 경험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는 작업을 말한다. 또한 ‘효과화’(effectuation)란 ‘하나의 효과로 화하기’란 뜻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그것은 그가 그의 몸에서 일어난 숱한 변화들의 한 효과로 화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주체가 그저 한 효과로,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 그치지 않고 그 효과를 자기화하면서 그 사건을 자신의 사건으로 살고자 할 때 ‘반-효과화’(counter-effectuation)가 성립한다.

들뢰즈의 잠재성의 철학은 ‘조건짓기’의 논리인 ‘현실화’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모든 현실적인 것은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된 것이기에 ‘기초짓기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것에서 잠재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반-효과화’의 운동이야말로 영원히 종속되지 않기 위한 철학이다. “반-효과화는 현실적인 것 안에 포함된 카오스적으로 ‘모호한 사건’(비-현실적인 것)을 잠재성을 향해 역-전개하는 힘―혁명적인 것-되기―이다.” <의미의 논리>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몇 차례 등장할 뿐인 ‘반-효과화’론을 들뢰즈 철학의 ‘긍정되어야 할 것’으로서 포착하고, ‘에티카’에 도달하는 과정을 해명하며, 칸트와 스피노자의 철학을 양립시키는 이 책은 논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만큼 난해하다.

에가와 다카오가 쓴 <존재와 차이>의 주제는 질 들뢰즈(사진)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선험적 경험론’과 ‘존재의 일의성’을 ‘반-효과화’의 관점에서 종합함으로써 하나의 ‘에티카’를 형성하는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에가와 다카오가 쓴 <존재와 차이>의 주제는 질 들뢰즈(사진)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선험적 경험론’과 ‘존재의 일의성’을 ‘반-효과화’의 관점에서 종합함으로써 하나의 ‘에티카’를 형성하는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에가와가 이해를 돕기 위해 예로 드는 것이 부모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공부하고 놀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이 말을 사람의 인생 속에서 생각한다면 ‘먼저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후에 놀아라’라고 바꿔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말은 이미 주어진 규범으로서 다수자의 가치를 내면화시키고, 공부가 만들어낸 경계선에 의해서 놀이가 관리되도록 하려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에가와는 “시대나 사회를 공동체로서 도덕적으로 부패시키는 것은 실은 이러한 시간을 보낸 인간이(다). (…) 그들은 놀 수 없다. (…) 그 가두어진 놀이는 항상 추악하다”라고 지적한다.

에가와가 생각하는 진정한 놀이란 이런 것이다. “놀이는 노상에서도 건물 사이에서도 이웃집 담 위에서도 숲속에서도 해저에서도 산꼭대기에서도 성립하는 것이다. 소유지도 울타리도 척도도 없는 ‘생’의 영역, 즉 ‘평활한’ 공간이 있고,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 초곡면(유일한 내재면)을 찾아내는 것, 또한 이 평면상에서 ‘존재의 방식’을 획득하는 것이 ‘에티카’이며, 바로 그때 아이나 어른 같은 인간의 부분 속에서 놀기를 계속하는 초인(신체의 본질)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이다.”

번역은 이 연구원이 초벌 번역을 하고 학문 공동체 ‘소운서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의 대표적 들뢰즈 연구자 이정우 경희사이버대 교수를 포함한 참가자 3~4인과 함께 읽고 토론하며 다듬었다고 한다. 이 연구원은 <한겨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책의 가장 참신한 점은 들뢰즈 철학의 저류에 흐르지만 거의 평가받지 않았던 ‘반-효과화’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들뢰즈 철학을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들뢰즈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선험적 경험론’은 현재 일본의 들뢰즈 철학계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인데, 본서가 그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들뢰즈 철학을 수용하는 데 머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젊은 연구자가 꾸준히 등장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철학을 전개하는데, 이 책이 이러한 현상의 산파 역할을 했다. 에가와의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중진 연구자들도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난해한 편이다. 이 책은 해설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가는 글쓰기이고 또 독자적인 용어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한데, 반복해서 읽어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의외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 책의 후속편 격으로 출간된, 잔혹과 무능력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죽음에 관해 들뢰즈와 스피노자, 아르토를 내세워 논의하는 에가와의 <죽음의 철학>(2005)을 번역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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