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유쾌 상쾌 통쾌한 웃음을 위하여

등록 2019-01-11 06:00수정 2019-01-11 19:05

“유머는 일정한 세계 공유하며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정신”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
공감, 맥락에 대한 감수성 필수
유머니즘-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지난해 12월5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41대)의 장례식이 치러진 워싱턴 대성당.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웃음이 자주 터져 나왔다. 추도사를 한 이들은 고인을 기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아들 조지 부시 전 대통령(43대)도 추도사 중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그는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죠. 그의 (골프) 쇼트게임 실력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프레드 어스테어(미국의 유명 뮤지컬 배우)와 같지 않았죠.(춤 실력도 신통치 않았다는 뜻) 그 남자는 야채를 못 먹었습니다. 특히 브로콜리는요. 그런데 그는 이런 유전적 결함들을 우리한테 물려줬습니다.” 추모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유머는 서구의 정치인들한테 필수 자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유머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고정관념이나 기존 질서를 비틀고 뒤집는 재치에 배꼽 빠지게 웃기도 한다. ‘뼈 있는 농담’이라는 말이 있듯, 유머는 본질을 통찰하는 지성의 산물이다. 하지만 웃기자고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특정집단을 비하하기도 한다. 섬세한 공감능력이 없는 유머는 불쾌하고 위험하다.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이다. 공감능력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건강한 웃음을 낳는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이다. 공감능력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건강한 웃음을 낳는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유머니즘>은 남을 웃기는 노하우를 알려주거나 우스갯소리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유머의 기원과 역사, 유머의 본질, 건강한 유머의 조건과 사회적 의미를 문학과 철학, 영화, 신문기사 등 여러 사례를 들며 탐색한다. 지은이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라고 말한다. <모멸감>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멸감의 실체를 분석한 지은이가 이번에는 유머의 정체를 파헤쳐 보려 한다. ‘유머니즘’은 ‘유머’와 ‘휴머니즘’의 조합이다. “유머를 위한 유머가 아니라 인간애로 연결되는 유머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말에서 지은이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유머는 “어떤 말이나 표정, 동작 등으로 남을 웃게 하는 능력, 또는 웃음이 나게 만드는 어떤 요소”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된다. 가까운 말로 ‘익살’이 있고, 한자어로 ‘해학’ ‘골계’가 있다. 웃음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터져 나온다. 사회성이 짙다. 지은이는 아득한 옛날부터 웃음이 “안도감을 확산시키기 위한 신호였으며, 오랫동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달된 소통수단이었다”는 가설을 설명한다. 웃음에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는 자연스러운 웃음인 ‘뒤센 미소’(신경심리학자 기욤 뒤센의 이름을 따서 붙여짐)가 있고, 팬아메리칸 항공사 승무원들의 억지웃음을 빗대 붙여진 ‘팬아메리칸 미소’가 있다. 함박웃음과 너털웃음, 폭소가 있는 반면, 비웃음과 억지웃음, 냉소도 있다. “좋은 웃음과 나쁜 웃음을 가르는 기준은 ‘공감’이다.”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이다.

근대 이전에는 웃음이라 하면 주로 비웃음을 가리켰다. 웃음을 자아내는 피에로, 광대, 각설이 등은 천시됐다. 양반이나 귀족한테 깔깔대는 웃음은 ‘아랫것들의 짓’이었다. 18세기께부터 영국에서 남을 웃기는 게 ‘미덕’이 됐다. 커피하우스와 클럽이 번성하고 귀족과 차별되는 부르주아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유머가 지배층의 개인 미덕으로 칭송되기 시작한 것이다.

웃음을 일정한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에서 터져 나온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웃음을 일정한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에서 터져 나온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도대체 유머가 무엇인지 규명하려는 세 갈래 흐름이 있다. 재밌는 얘기에 우리는 “빵 터진다.” 뭔가 억눌린 것이 한순간에 분출한다. 실컷 웃고 나면 심신이 개운해진다. 그런 느낌을 이론화(에너지 이론)한 사람이 사회진화론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다. 웃음을 증기기관의 원리로 설명하려고 했다. 또 한 명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다. 억압된 성적 충동과 공격 욕구를 농담을 통해 방출한다는 것이다.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는 권력을 비웃는 농담이 회자된다.

다른 사람의 결함이나 실수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자신이 더 낫다는 우쭐함이다. ‘우월 이론’은 이를 주목한다.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마스 홉스(1588~1679)는 웃음의 본질을 ‘갑작스런 득의’의 감정이라고 봤다. 다른 사람이 낭패를 보면 고소해 하는 ‘쌤통’ 심리가 깔려 있다. ‘몰래 카메라’를 볼 때 나오는 웃음이 한 예다.

웃음의 본질을 인지적 측면에서 보는 ‘불일치 이론’(또는 반전 이론)도 있다. 질문의 의도를 오해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핵심인데, 이때 나오는 감탄사가 “헐!”이다. “유머가 성립하려면 일단 말이 돼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이 안 돼야 한다.”

유머는 그 의도가 빗나갈 위험을 안고 있다. 웃자고 한 말인데 죽자고 덤비고, 진지한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웃겨보겠다고 한마디 했는데 전혀 웃기지 않았을 때의 무안함을 누구나 맛봤을 터다. “맥락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사람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이들과의 관계는 어떤 정서로 채워졌는지, 어떤 경험과 기억을 공유해 왔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유머는 개인이 발휘하는 능력이나 감각이지만, 신뢰와 공감의 사회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우연의 예술인 경우가 더 많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자신과 나치 정권을 희화화하지 않도록 통제하며, 개나 말에 ‘아돌프’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한 배우의 방송출연을 금지시켰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웃음은 금기였다. 웃음은 불온하다. “재기발랄한 지성이 발현하고 통제 불가능한 기운이 번져가는 것은 권세자에게 위협이 된다. 웃음에는 혁명의 씨앗이 잠재되어 있다.” 권력집단에 대한 풍자는 통쾌하다. 일종의 저항이다. “풍자의 궁극적 목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핵심은 조롱이나 공격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대한 열망이다.”

지은이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쾌감을 느끼는 비웃음,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희롱, 권력과 지위에 도취되어 짓는 과시적인 미소 등 ‘병적 웃음’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진단한다. 혼밥, 혼술, 일인가구의 증가는 더 고립되고 단절되어가는 삶의 징표다. 웃는 일은 줄어든다. 지은이는 “언제, 어디서, 왜, 누구와 함께 폭소를 터뜨렸는가”를 물으라고 한다. “바로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새해에는 격조있는 농담을 주고 받자. “유머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까닭은 척박한 일상에 윤기를 더해주고 허약한 지성에 생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1.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2.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3.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4.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5.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