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바흐에서 전자음악까지
박영욱 지음/바다출판사·1만8000원
공포영화에 나올 것 같은 기괴한 음향, 의미를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소리, 일상의 소음을 잡다하게 모아둔 것 같은 음악…. 현대음악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작곡가들은 대체 왜 이런 음악을 만든 걸까?
박영욱 숙명여자대학 교양학부 교수가 쓴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이런 의문에 답할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현대음악이 어떤 점에서 혁명적인지를 명쾌하게 서술하는 책이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후설, 아도르노, 베냐민, 들뢰즈 등의 철학에서 현대음악을 설명해주는 개념을 적확하게 끌어내는데, 마치 그 개념이 원래부터 현대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처럼 들릴 정도다. 현대음악이 이전의 음악과 다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악보와 음악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이를 몰라도 논지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에곤 실레가 그린 <아르놀트 쇤베르크>(1917년). 출처 위키피디아
첫 번째 현대음악가로 꼽히는 쇤베르크는 자신을 아방가르드 혁명가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독일 음악의 전통에 있는 작곡가로 생각했다. 그는 조성음악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전통적 조성이 음의 보편적인 질서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고, 이를 넘어서 더 보편적인 조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끝에 만들어낸 것이 무조음악, 더 정확히는 음렬주의였다. 이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전통과 관습 등 자연적 질서로 간주되어온 모든 것들을 ‘판단중지’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풍부한 사물의 질서에 도달하려고 한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이런 현상학적 환원은 이후 전자음악가들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수평과 수직의 통합을 미리 주어진 보편성으로 간주한다는 점, 그의 무조음악 또한 보편적인 조성을 추구하며 거시적인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점을 지적한 사람이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였다. 불레즈는 음렬의 세계를 단지 음 간격(음고)의 차원에서만 다루는 쇤베르크의 일면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음을 구성하는 다층적 측면, 즉 음고를 포함해서 음길이, 강세, 연주방식의 4가지 음 요인 모두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불레즈의 ‘총음렬주의’다.
쇤베르크를 비판하고 총음렬주의를 주창한 프랑스 작곡가·지휘자 피에르 불레즈. 한겨레 자료사진
불레즈가 음악적 아이디어를 찾아낸 사람은 쇤베르크의 제자인 베베른이었다. 불레즈는 베베른의 음악에서 수직적 관계를 이루는 음이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멜로디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고, 단지 중첩을 통해 음악적 순간과 소리현상을 만들어내는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대각선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이런 대각선적인 것을 구현하기 위해 불레즈는 수학적 방정식을 이용하여 음렬을 무한히 증식시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접근하는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을 내놓는다. 이런 불레즈의 음악적 시도는 위계질서에 의해서 개별적 음의 무한한 가능성이 위축되지 않는 대신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을 수용하는,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내재성의 평면’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평가다.
이외에도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이란 새로운 음악적 재료들로 기존의 장단음계의 조성음악과 진정한 단절을 이뤄낸 셰퍼, 바레즈, 슈톡하우젠 같은 현대음악가들과, ‘지속'(라몬트 영), ‘모듈'(테리 라일리), ‘위상변위'(스티브 라이히), ‘추가와 생략'(필립 글래스)을 통해서 음악사에서 반복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미국의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에 대한 해설도 흥미롭다. 그동안 현대음악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 책이 그런 아쉬움을 상당 부분 해소해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