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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자의 발명은 왜 여성들의 재앙이 됐나

등록 2018-12-28 08:59수정 2018-12-28 19:53

알파벳과 여신-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레너드 쉴레인 지음, 윤영삼·조윤정 옮김/크레센도·2만6000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세계는 여신들이 주관했다.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시대 초기까지도 인류는 여신을 섬겼다. 공동체 종교의례를 집전하는 사제도, 신탁을 전하는 이들도 여성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신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유가 뭘까? <알파벳과 여신>은 미국의 외과 의사가 그리스 여행 중 품게 된 의문을 풀기 위해 수천년의 인류문화사를 탐사한 책이다.

지은이는 인류의 위대한 진보인 ‘문자의 발명’이 여신과 여성에겐 재앙적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문자 시대 이전의 모든 농경 문명에선 어머니 여신이 최고신이었으며, 양성은 평등하고 조화로웠다. 문자의 발명은 사회에 폭발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치명적 부작용도 동반했다. 문자의 사용으로 추상적·분석적 사고가 구체적·종합적 이미지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했고 음양의 균형이 깨지지 시작했다. 문자가 여성의 가치와 권력을 약화시키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강화하는 무기로 활용됐다는 것.

지은이는 독특한 가설을 논증하기 위해, 인류의 고대문명과 창조 신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문자의 등장과 여신의 몰락, 알파벳과 한자의 역사, 유일신 체계와 종교적 불관용, 힌두교·도교·불교 등 동양의 종교, 르네상스와 마녀 사냥, 20세기 광기의 역사까지 전방위적인 인문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신경해부학 지식과 뇌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좌뇌(분석)와 우뇌(종합)의 특성, 남녀 간 사고방식의 차이와 문자 사용의 연관성에도 주목한다. 지은이는 그러나 20세기 이후 영화와 티브이(TV), 컴퓨터 등 이미지 시대를 맞아 가부장제는 갈수록 힘을 잃고 여신의 시대가 부활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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