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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교조적 주자 해석으로 파국 맞은 조선의 구빈사업

등록 2018-12-28 08:59수정 2018-12-28 19:58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중국·일본과 어떻게 달랐나
박광준 지음/문사철·2만5000원

“빈곤정책은 조선왕조의 장기존속을 설명하는 데도, 그리고 그 멸망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왕조체제의 본질에 얽혀 있다.”

박광준 일본 붓쿄대학 교수(사회복지학)가 조선시대 빈곤정책의 본모습과 이를 동시대 일본, 중국과 비교하는 연구를 담은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을 내놨다. 박 교수는 조선왕조의 구빈시스템은 국가가 직접적인 빈곤구제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한다. ‘아사자가 절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수하면서 구빈사업을 왕과 지방관의 중요한 책무로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조적인 조선주자학은 빈곤 구제의 기능을 가진 시장과 교역을 억제한 결과 정부의 부담은 갈수록 늘어났고 결국 재정 파탄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마치 공산주의와 유사한 체제 속에서 수백년에 걸쳐 시장이 억제되어온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이다. 환곡 등 대규모의 국가구제가 사실상 멈춘 지 20년 만인 1862년 조선에서 전국적인 농민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런 제도들은 조선왕조를 500년간 지속하게 만들었던 핵심 정책이었다고 평가한다.

정조 7년(1783년)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구호 방법을 규정한 법령집인 <자휼전칙>.  아이들이 부모 및 친척 등 의지할 곳을 찾을 때까지 구호하고, 자녀나 심부름꾼이 없는 사람들이 맡아 기르게 하기 위한 구휼법을 담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정조 7년(1783년)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구호 방법을 규정한 법령집인 <자휼전칙>. 아이들이 부모 및 친척 등 의지할 곳을 찾을 때까지 구호하고, 자녀나 심부름꾼이 없는 사람들이 맡아 기르게 하기 위한 구휼법을 담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박 교수는 이런 점에서 ‘환곡제도가 백성을 빈곤으로 몰아넣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해온 실학자들의 문제점을 짚는다. 조선 조정은 500년 내내 ‘지방관이 지역을 잘 다스리도록 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민생이 안정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만병통치약처럼 가지고 있었고 이는 실학자들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학자들이 절대적인 식량 부족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부패만을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태도였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조선의 구빈정책을 중국(청나라), 에도 시대 일본과 비교사적으로 다루며 정책의 빈 곳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조선왕조의 구빈정책은 발달하지 못한 화폐경제와 주자학 교조주의의 조합으로 설명된다고 요약했다. 반면, 에도 일본은 화폐경제와 도시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빈곤 문제를 대부분 시장시스템 내에서 해결하게 했고, 시장 기능이 멈추는 심각한 기근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막부가 직접적 구빈 사업을 실행하는 체제였다. 청나라에선 자립농민의 양성을 중시한 법가적인 사회기반 위에서 유교의 통치이념을 받아들였기에 구제 방법도 식량지급, 금전지급, 공공사업, 구빈식당의 설치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차이점이 나타난 곳은 ‘의창’ 제도였다. 중국의 창 제도는 시장경제와 계약적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유통구조와 시장의 정비를 선제 조건으로 하는 제도였다. 언제든 곡물을 기근 발생 지역으로 옮길 수 있도록 교통망과 물류망을 정비하고, 곡물과 화폐를 교환할 시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에선 이런 중국 고유의 풍토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창 제도를 해석해 오로지 가난한 백성을 먹여 살린다는 유교적 인정 실현의 수단으로 간주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주희(주자)가 실천한 ‘사창’은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시장경제에 믿음을 둔 신자유주의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실천으로, 교조적 주자학에 매몰된 조선 사대부들은 그 실상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 책에 이어 그 이후 시대를 다룬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사회정책사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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