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탄생기-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현대도시 서울의 사회사송은영 지음/푸른역사·2만9000원
서울이 ‘현대도시’로 탈바꿈해온 역사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들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감수성까지 담아내려면, 그것들로는 역부족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아마도 문학일 것이다. ‘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현대도시 서울의 사회사’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서울 탄생기>에서, 지은이 송은영(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은 문학을 통해 도시를 보는 자신의 작업을 ‘감수성의 고고학’이라 일컫는다. “현대도시 서울의 탄생과 관련된 기억들은 이제 사람들의 언어와 잠재의식에만 남아 있기 때문에, 문학적 언어에 새겨진 그 단층들을 다시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표상을 담았던 문학 작품들을 재료로 삼아 서울이 현대도시로 재탄생하는 역사적 과정을 다시 그려낸다. 이호철, 김승옥, 박태순, 신상웅, 최인훈, 하근찬, 손창섭, 이문구, 이청준, 최인호, 조선작, 조해일, 박완서, 윤흥길, 조세희, 최일남 등 작가 16명의 소설 110여편이 책 곳곳에 깨알같이 박혀 있다. ‘사료’가 된 이들 문학 작품들은 건조한 ‘기록’의 틈을 채우고 ‘기억’의 결을 새롭게 메운다.
1968년 추석 귀성길에 나선 ’서울 사람들’로 가득 찬 서울역 광장. 푸른역사 제공
흔히 “60~70년대”라고 싸잡아 말하지만, 지은이는 1961~66년, 1966~72년, 1972~78년 등 세 시기로 구분한다. 이때 61~66년은 “본격적인 도시개발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며, 아직 근대권력에 의한 도시의 재배치가 강제되기 이전이다. 서울은 현대도시로서 물질적 풍요를 주기 이전부터 이미 향수병의 대상이었다. 1977년 이청준은 자신의 문학인생을 중간 결산하면서 자신의 연보를 스스로 작성했는데, 1965년 문단 데뷔의 의미를 “잘 하면 서울에서 다시 쫓겨 나가지 않을 수 있는 소중한 구실이 마련된” 데에서 찾았을 정도다.
그것은 도시 빈민으로서 비참과 절망을 견뎌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이들로 하여금 서울에 대한 동경을 선취(先取)하게 만든 것은, 좁은 시골의 공동체에서 억압받았던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감이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숨겨진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읽어내는 것을 포함”한다. 최인훈은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편에서 “서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애(愛)의 축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지는 순간을” 담았다. 서울은 드디어 자신이 뿌리를 내릴 곳, 그 더러움과 남루함까지 사랑할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1965년 마포아파트 주변 도원동, 도화동 풍경. <서울은 만원이다>의 주인공 길녀가 마지막에 살던 곳이다. 출처 국가기록원. 푸른역사 제공
1966년 광화문 지하도 공사. 세종로가 아직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이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푸른역사 제공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1966년은 첫 분기점이다. ‘불도저 시장’ 김현옥과 함께 서울은 본격적으로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이전 문학작품에선 전쟁 뒤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악, 거짓말, 사기, 허세에 가득찬 인물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는데, 66년 이후론 이런 인간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서울의 중심축이 강남으로 이전되기 직전, 강북 도심권의 마지막 전성기를 기록한 문학작품일 것이다.” 근대 권력이 강제한 도시개발은 약자의 희생과 배제를 제물로 삼았고, 와우아파트 붕괴, 광주대단지사건 등은 이런 갈등이 폭발하는 현장이었다. 이청준, 박태순, 윤흥길 등의 작품들이 이런 시대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한강변의 강남 아파트 단지와 강북을 가르는 한강의 모습.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은 강남의 공간적 차별화를 보여주는 항목으로 명문학교와 함께 위생을 들고 있다. 출처 국가기록원. 푸른역사 제공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시작된 1972년은 60~70년대를 가르는 두번째 분기점이다. 부동산 투기를 소재로 한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은, “도시공간을 부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경제적 공간 감각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전사회적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서울은 “한국 사회의 모든 욕망을 흡수하는 절대적 중심의 공간”이 된 것이다.
책은 이런 역사를 거쳐온 우리가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의 주름’이 있지 않은가 질문한다. 어머니는 갖은 고생 끝에 허름한 집 한 채 마련한 뒤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고 안도했다.(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그러나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엄마의 말뚝은 뽑”혔다. 이제 그것을 더듬을 수 있는 기억은 문학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