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국내서
한반도에 봄 기운이 넘쳤다. 남북의 만남은 북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추위는 어김없이 닥쳤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새벽 홀로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책은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을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한겨레>는 올해도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영인 문학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이 선정했다.
한반도에 봄 기운이 넘쳤다. 남북의 만남은 북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추위는 어김없이 닥쳤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새벽 홀로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책은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을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한겨레>는 올해도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영인 문학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이 선정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형철 지음/한겨레출판·1만6000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소설도 1만부 판매가 쉽지 않은 세태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불과 석 달 만에 4만부 가까이 팔렸다. 올해 작고한 선배 비평가 황현산처럼 신형철 역시 문학의 경계를 넘어 다수 독자를 열성 팬으로 확보했다는 방증이겠다. 슬픔의 수미쌍관. ‘슬픔’을 앞뒤에 거느린 책 제목은, 슬픔 공부의 절박한 필요성과 그 어려움을 요령껏 갈무리한다. 숱한 죽음과 폭력으로 사회 전체가 휘청거릴 때, 그중에서도 약한 이들과 착한 이들에게 슬픔과 아픔이 쏠릴 때, 신형철은 자주 탄식하고 때로 원망도 하지만, 주로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돈한다. 문학이 그에게는 슬픔 공부의 첩경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승태 지음/시대의창·1만6800원 고기로 태어난 건 마찬가지인데, ‘힘쓰는 고기’(노동하는 인간)와 ‘맛있는 고기’(닭·돼지·개)는 왜 다른가?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닭·돼지와 개 사이에는 구분이 없는가? <고기로 태어나서>는 르포 작가 한승태가 4년 동안 식용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기’들의 고통을 동력으로 삼아 돌아가는 축산 산업의 한복판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서 있는 온갖 경계들을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정당화되고, 그것은 결국 괴물이 된다. 지은이가 멱살을 쥐고 데려간 현장을 경험해본 뒤에,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홍성수 지음/어크로스·1만4000원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부로 진입했다. 일베 등이 사용하는 극단적인 혐오표현부터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된장녀’ ‘홍어’ ‘흑형’ 등이 끊임없이 기삿거리를 만들어냈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란 대의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지는 답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나라들처럼 혐오표현을 규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소중하다. 그는 이 책으로 당대의 문제에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이상길 지음/문학과지성사·2만9000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90년대부터 한국 지식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하비투스’, ‘장(場) 이론’ 등 그의 이론과 개념들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상길 연세대 교수는 과연 우리가 부르디외를 제대로 ‘써먹고’ 있는지 묻는다. 부르디외와 그의 이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우리의 수용까지 폭넓게 조명하는 <아틀라스의 발>은 무엇보다 “대상이자 방법으로서 부르디외”에 주목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의 사회학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학문적 지렛대의 받침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포스트 식민’ 상황에서 어떻게 학문을 할 것이냐 하는 운명 같은 물음에 치열하고 성실한 ‘되물음’을 제출한, 흔치 않은 연구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박희병 지음/돌베개·전권 20만원 18세기 조선의 선비화가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은 그림·글씨·시 분야에서 삼절(三絶)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태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 단행본 한 권 없었다.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은 한문학자 박희병(62) 서울대 교수가 20여년 동안의 노력을 들여 그의 삶과 사상,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대작이다. 새 문헌을 발굴하고 금석문의 현장 탁본을 뜨고 경매에서 작품을 사서 연구하는 등 지은이가 기울인 치열한 노력은, 조선의 보수 지식인이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열게 됐는지 새롭게 밝혀줄 뿐 아니라 기존 미술사학계의 연구 풍토에 통렬한 비판을 던진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김은실 엮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올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단어가 있다면 단연 ‘미투’(#metoo)가 아닐까. 미투 운동과 그 전의 문단 내 성폭력 등 젠더 문제가 발생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면, 페미니즘 책들은 역사와 이론과 공감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김은실, 권김현영, 정희진 등 국내의 여성학자 9명이 미투 운동과 탈코르셋 운동, 여성 입대 논쟁, 저출산 담론 등 지금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주제들을 논한 책이다. 사건에 대한 즉물적 반응에 멈추지 않고, 더 심층으로 들어가 벌이는 논쟁이 페미니즘을 계속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김혼비 지음/민음사·1만4800원 “기절할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여성 김혼비(필명)가 들려주는,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 사랑 에세이. 한국의 아마추어 축구에는 어쩐지 ‘아저씨 냄새’가 난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 지은이는 책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첫 책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맛깔스런 글솜씨를 축구공 삼아, ‘맨스플레인’을 일삼는 남성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 경쾌한 드리블과 페이크와 정면돌파로 짜릿한 슈팅을 날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사회적)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정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킥킥’ 웃음과 울컥한 감동을 자아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송효정·박희정·유해정·홍세미·홍은전 지음/온다프레스·1만6000원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화상 경험자들이 용기를 냈다. 중증 화상을 겪은 일곱 사람과 가족이 사고의 기억과 고통, 절망 그리고 다시 ‘나’를 찾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치료와 수술,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들이 많다. 힘겨운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곁에 있는 다른 환자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자신을 긍정했다. “있는 그 모습.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봐줘야 해.” 화상 경험자들에게 응원을 보내야 함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책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김원영 지음/사계절·1만6000원 선천성 지체장애인 김원영(37)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국내외 사례 및 이론 연구를 토대로 장애인, 소수자,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참뜻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냈다. 존엄을 위한 퍼포먼스, 품격과 실격, 잘못된 삶 소송, 인위적 장애 선택 등 생소하고 불편하기까지 한 개념과 논쟁 사례들을 제시하며, 한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로 존중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결핍을 수용하는 윤리적 결단과 권리의 발명”을 강조한다. 이는 “예의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 긴 시간을 들여 상대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실천”에서 가능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김두식 지음/창비·3만원 일제강점기와 극한의 이념 대결을 통과해온 한국 근현대사의 규정력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문제들을 드러내왔던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법률가들>에서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법조계의 어두운 기원을 파헤쳤다. 3년 동안 수많은 자료를 뒤져 해방 뒤의 법률가 3000여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인 만큼, 신선한 ‘팩트’들이 빼곡하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기원에는, 식민지의 잔재와 ‘관제 빨갱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출세를 쫓았던 이들, 시험도 보지 않고 법관이 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어두운 기원을 직시하고 반성할 용기가 과연 있는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정면으로 묻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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