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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동자들은 더 많은 발언과 개입을 원한다

등록 2018-12-14 06:02수정 2018-12-14 19:55

노동자가 원하는 것-공존을 위한 설문 보고서
리처드 프리먼·조엘 로저스 지음, 이동한 옮김/후마니타스·2만1000원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었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출범 2년을 향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묻고 있다.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말하는 당신들은 과연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프리먼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사회학자 조엘 로저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가 함께 쓴 책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프리먼은 1994~1995년 미국 전역의 노동자 2400명을 대상으로 한 ‘노동자대표제와 참여에 관한 설문조사’(WRPS)를 주도한 바 있다.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이 결과물을 담은 책으로, 1999년 처음 발간됐다.

12일 엘지유플러스 하청업체 노동자 김충태,고진복(오른쪽)씨가 서울 강변북로 한강대교 북단에 있는 40미터 높이 철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14일째 단식중이며 철탑 꼭대기에서 “비정규직 끝장내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내리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2일 엘지유플러스 하청업체 노동자 김충태,고진복(오른쪽)씨가 서울 강변북로 한강대교 북단에 있는 40미터 높이 철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14일째 단식중이며 철탑 꼭대기에서 “비정규직 끝장내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내리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설문조사의 기획 목적은 “노동자들이 소속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스스로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 기업 경영에서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실현 가능한 방법은 무엇이라 보는지 파악하는 데 있다.” 그리고 치밀한 설계를 거쳐 시행된 설문조사의 결과는 노동계와 재계, 정계와 학계에 두루 충격을 줬다. 정말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 뭔지, 사실 누구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노동계가 좋아할 만한 결과들을 살펴보자. 전체 조사 결과의 결정적인 메시지는 “노동자 대다수가 자신들의 작업장에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더 많이 개입하고 발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노동자가 원하는 발언권 확대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종업원 단체 등) 집단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 회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경영진의 반대와 저항”을 꼽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발언권, 더 많은 법적 보호, 더 많은 노동자 대표 등 현재의 수준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는데, “권한을 공유하려 들지 않는“ 경영진 때문에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 하버드대 누리집 갈무리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 하버드대 누리집 갈무리
재계가 좋아할 만한 결과들도 더러 있다. “노동자들은 경영진과 대립적 관계보다는 협력적인 관계를 원한다”가 대표적이다. 상급단체 활동이나 정치활동 개입 등 직장 내 현안을 벗어난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등 노동조합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태도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좋아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은이들은 이것 역시 노조를 적대시하고 협력하지 않는 경영진에 대한 전략적 반응이라는 데 주목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동자대표제와 참여 시스템을 제공하는, 더욱 진보적인 노사관계의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 결론이다. 핵심은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노동자 대표’다.

지은이들은 초판이 나왔던 1999년과 개정증보판이 나온 2005년 사이에도 책의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거미줄처럼 촘촘한 외주와 하청으로 일터가 갈가리 찢어진 작금의 노동 현실 속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할까, 아니면 ‘더더욱’ 유효할까? 적어도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란 제목과, ‘공존을 위한 설문 보고서’라는 부제만큼은, 지금도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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