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탈 로넬 지음, 염인수 옮김/현실문화·3만3000원 미국의 해체주의 철학자로 어리석음과 중독 같은 변방의 관념을 탐색하며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사유를 펼쳐온 아비탈 로넬이 <루저 아들>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책에서 그는 권위를 어떻게 이해할지와 권위와 싸우는 형상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는 9·11 테러와 뒤이은 미국의 보복 전쟁의 중심인물이 모두 ‘루저 아들’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여객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돌진한 모하메드 아타는 아버지에게 업신여김을 받은 ‘못난 아들’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부시 대통령도 ‘천치’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루저였다. 이들은 서로 정반대편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억압을 세계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로넬은 파괴하는 루저가 아닌 ‘훌륭한 루저’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그 대표적 인물이 프란츠 카프카다. 로넬은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카프카가 아버지의 권위를 비난하면서도 그 권위를 상속하라는 유혹에 계속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카프카는 권위의 안팎에 끈질기게 머무르면서 지는 법을 헤아리는 드물게 훌륭한 루저다. 로넬은 권위를 해독하는 ‘훌륭한 루저’에서 더 나아가 권위의 장악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을 품은 시기로 ‘사춘기’를 정치화한다. 프로이트의 사례 연구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 엠마가 모범적 형상으로, 사춘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권위에 생채기를 낼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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