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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반도에 드리운 바이마르의 비극

등록 2018-12-14 06:02수정 2018-12-14 15:58

냉전에 이데올로기 토대 제공한
민주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던
바이마르 망명지식인 5명의 초상
남북 분단에 관여한 프랭켈도 조명

바이마르의 세기-독일 망명자들과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우디 그린버그 지음, 이재욱 옮김/회화나무·2만3000원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선 혁명이 일어났다. 패전의 책임을 물어 왕정을 무너뜨린 자리에 독일 역사상 첫 민주주의 국가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수립했다. 공화국에선 초인플레이션과 정치적 암살, 쿠데타 기도, 좌우 대결로 마치 한반도의 해방 직후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했다.

이 시기에 민주주의 체제를 바로 세워 공화국을 지키려 노력한 일군의 집단이 있었다. 이들 민주주의 옹호론자들은 강력한 반공주의자들이기도 했는데,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따라 국가로 실체화된 공산주의의 물결이 공화국을 덮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화국을 멸망시킨 것은 반공주의를 공유했던 등 뒤의 적, 나치였다. 1933년 나치의 집권으로 공화국이 무너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들은 미국으로 망명한다.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한국 등지에서 미국과 소련의 체계 경쟁이 시작되자, 반공주의적 민주주의자인 이들에게 활동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이중 대표적인 이들이 카를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프랭켈, 발데마르 구리안, 카를 뢰벤슈타인, 한스 모겐소였다. 미국 다트머스대 역사학과 부교수인 우디 그린버그가 쓴 <바이마르의 세기>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온 독일인 5명이 어떻게 미-소 냉전 시기 미국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설계자가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지성사다.

1946년 미-소 공동위원회 관계자들과 함께 선 에른스트 프랭켈(오른쪽에서 세 번째). 그는 미국 대표단 중에서 가장 반공적인 구성원이었다. 사진 Wolfgang M?ller, 회화나무 제공
1946년 미-소 공동위원회 관계자들과 함께 선 에른스트 프랭켈(오른쪽에서 세 번째). 그는 미국 대표단 중에서 가장 반공적인 구성원이었다. 사진 Wolfgang M?ller, 회화나무 제공
이들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이가 에른스트 프랭켈이다. 한반도 분단에 적지 않은 관여를 했다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프랭켈은 법학자이자 사회민주주의자로 사민당의 법률 자문이었지만, 나치의 체포 대상에 오르자 미국으로 급히 망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사무국(OSS)에서 일했던 그는 1945년 주한미군의 고위 관리로 한국에 왔다.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던 그는 미-소 공동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자 소련과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며, 남북의 공동 총선을 위한 협상을 한시라도 빨리 종결시키자고 요구했다. 그가 이승만에게 공동위원회를 보이콧하라고 조언했다는 등 협상 실패의 책임이 프랭켈에게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미군정 내에서 나올 정도였다. 프랭켈은 한반도 전역의 공동 선거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방문한 국제연합(UN)의 국제대표단 구성원들을 만나 남북 분단을 의미하는 즉각적인 선거 실시로 마음을 바꾸도록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프랭켈에게) 공산주의를 격퇴하기 위해서라면 한국인들의 불행은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가였다.”

법학자인 프랭켈은 1948년 단독정부를 수립한 남한의 헌법 초안 작성을 감독했는데, 그의 영향으로 제헌헌법에 사민주의 원리들이 포함되었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실제로 제헌헌법에는 평등한 교육권, 노동삼권, 최저임금 등을 보장하는 조항들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의 반공주의적 독재가 경제발전을 일궈낸다면, 민주주의로 가는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국 경제협력처(ECA)의 최고위직을 맡아 미국의 막대한 원조 자금으로 남한을 재건하는 사업을 주도했다. 사민주의자로 남북 분단에 관여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한 독일인의 삶에서 한반도 분단이 바이마르의 몰락과 이어지는 대목은 역사라는 비극적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1948년 한국의 농촌 지역을 방문한 에른스트 프랭켈(가운데)과 그의 부인 한나(왼쪽). 프랭켈은 남한 원조 사업을 하는 미국 경제협력처(ECA)의 법률고문이었다. 사진 Wolfgang M?ller, 회화나무 제공
1948년 한국의 농촌 지역을 방문한 에른스트 프랭켈(가운데)과 그의 부인 한나(왼쪽). 프랭켈은 남한 원조 사업을 하는 미국 경제협력처(ECA)의 법률고문이었다. 사진 Wolfgang M?ller, 회화나무 제공
이외에도 책에선 막스 베버의 제자이자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라는 미국 외교계의 거물을 키워낸 카를 프리드리히, ‘전체주의 이론’을 창시한 가톨릭 언론인 발데마르 구리안, 남미에서 대량 투옥 캠페인을 이끈 카를 뢰벤슈타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권위자 한스 모겐소 등 독일 망명 지식인들의 지적·정치적 여정이 충실하게 그려진다. 옮긴이 후기에 나온 2015년 책 출간 직후 미국 역사학계의 반응도 그랬지만, 특정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업의 성격상 이들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들이 없었다면 미-소 냉전 구도가 달라졌을지 아니면 그대로였을지 나름의 답을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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