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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 출판의 역사 ‘딱지본’의 모든 것

등록 2018-12-14 05:59수정 2018-12-14 19:53

오래된 근대, 딱지본의 책그림
오영식·유춘동 엮음/소명출판·5만5000원

“울긋불긋한 표지에 사호활자로 인쇄한 백 쪽 내외의 소설은 ‘이야기책’의 대명사를 받아가지고 문학의 권외에 멀리 쫓기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지에서 길러낸 문예의 사도들의 통속소설보다도 이것들 ‘이야기책’이 훨씬 더 놀라울 만큼 비교할 수도 없게 대중 속에로 전파되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팔봉 김기진(1903~1985)이 <대중소설론>에서 언급한 ‘이야기책’은 흔히 ‘딱지본’이라 불린다. 근대 인쇄술의 도입과 함께 등장했던 딱지본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 근대 출판 역사의 커다란 흐름이었다. 근대서지학회의 노력으로 최근 출간된 <오래된 근대, 딱지본의 책그림>은 딱지본의 실체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자료집이다. 어렵게 수집한 534종 750책 딱지본의 표지·판권지 이미지가 중심이며, 딱지본에 대한 최신의 연구 성과를 함께 실었다.

<구마검>(대한서림)의 표지. 1908년 12월. 한국 최초의 만화가로 꼽히는 관재 이도영(1884~1933)이 표지화를 그렸다.
<구마검>(대한서림)의 표지. 1908년 12월. 한국 최초의 만화가로 꼽히는 관재 이도영(1884~1933)이 표지화를 그렸다.
<구운몽>(동문서림)의 표지화. 1913년 3월10일. 유명한 타이포그라피 <은세계>의 방식을 패러디했다.
<구운몽>(동문서림)의 표지화. 1913년 3월10일. 유명한 타이포그라피 <은세계>의 방식을 패러디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국문학 연구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딱지본 연구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됐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던” 과거 국문학자들은 딱지본을 ‘구활자본 고소설’, ‘신소설’ 등 소설의 하위항목과 동의어로 치부하곤 했다. 그러나 딱지본이란 이름은 책의 내용보다는 그 형태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대체로 “울긋불긋한 그림을 그린, 표지의 꾸밈이 황홀한, 여느 책에 비해서 활자 포인트도 크고, 정가도 비교적 싼 책”이라 정의할 수 있다. 때문에 책은 딱지본의 다양한 시각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이란가>(춘양사)의 표지. 1934년 12월5일. 유명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이란가>(춘양사)의 표지. 1934년 12월5일. 유명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옥중화>(보급서관)의 표지. 1913년 1월10일. 관재 이도영이 표지화를 그렸다.
<옥중화>(보급서관)의 표지. 1913년 1월10일. 관재 이도영이 표지화를 그렸다.
딱지본 출판이 처음 융성한 것은 1910년대로, 신소설의 유행을 뒤이어 고소설이 유행하는 흐름을 딱지본이 주도했다고 한다. 딱지본에는 대체로 통속소설들이 담겼는데, 척독집, 소화집, 가요집 등 다양한 실용서들도 딱지본으로 나왔다. “딱지본은 책을 상품으로 팔기 위한 책표지 디자인의 최초의 예”였다거나, “1910년대 일제의 ‘무단정치’ 시기 정기간행물에 대한 억압을 피하기 위해 출판사들이 찾은 활로가 딱지본 출판이었다”, “시골장터에서 봇짐장사가 파는 등 딱지본의 유통은 서적행상에 기댔다”, “근대의 산물이면서도 전근대를 상상하게 만드는 요소가 적지 않다” 등의 분석들도 흥미롭다.

<허영>(박문서관)의 표지. 1922년 9월20일. 유명한 음악인 홍난파의 초기 소설작품으로, 딱지본 형태로 나온 것이 이채롭다.
<허영>(박문서관)의 표지. 1922년 9월20일. 유명한 음악인 홍난파의 초기 소설작품으로, 딱지본 형태로 나온 것이 이채롭다.
<신기한 이야기>(덕흥서림)의 표지. 1933년 9월15일.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소화집이다.
<신기한 이야기>(덕흥서림)의 표지. 1933년 9월15일.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소화집이다.
<신구잡가>(신구서림)의 표지. 1927년 9월25일. 유행하던 노래들의 가사를 모아놓은 가요집이다.
<신구잡가>(신구서림)의 표지. 1927년 9월25일. 유행하던 노래들의 가사를 모아놓은 가요집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보문관)의 표지. 1925년 3월10일.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수일과 심순애>(보문관)의 표지. 1925년 3월10일.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딱지본’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경박하고 수준 낮은 책이라는 함의 뒤에는, 끈질기게 존재하여 도처에서 팔리고 있었던 책의 생명력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엮은이 오영식 근대서지학회장은 “이미지 텍스트로서의 딱지본에 주목하는 한편, 나아가 이런 표지가 갖는 의미를 회화적·미술사적·사회사적 입장에서 살펴보고, 더 나아가 출판사적 의미까지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오영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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