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자신의 작품 <있으려나 서점>을 들어보이고 있다. 주니어김영사 제공
“아이들은 감이 좋아요. 한두 페이지만 보고도 배워라, 반성해라, 새롭게 살아라 등 어른들의 의도가 빤히 드러나 보이는 책이라면, 그냥 덮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라면 과연 이걸 좋아할까, 이런 걸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책을 만듭니다.”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45)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주니어김영사의 초청으로 방한한 요시타케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그림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작업 방식 등에 대해 두루 이야기를 풀어놨다.
요시타케는 2013년 자신의 첫 그림책인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펴낸 뒤로, 펴내는 책 대부분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등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책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 <벗지 말걸 그랬어>는 일본에서 출간 6개월 만에 20만부를 돌파했으며, 2017년 볼로냐 국제도서전 라가치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도 그의 책 대부분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 <이게 정말 나일까?> <심심해 심심해> <있으려나 서점> 등 그의 책 8종을 펴낸 주니어김영사는 여태껏 20만부 팔렸다고 밝혔다.
그림책 <있으려나 서점>의 한 장면. 주니어김영사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 <있으려나 서점>의 한 장면. 주니어김영사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시타케의 그림책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일들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사과를 빙글빙글 돌리면 축 늘어지지 않을까(<이게 정말 사과일까?>) 따위의 생각에서부터, 팬티에 오줌을 지린 아이의 걱정(<오줌이 찔끔>), 심심하다고 칭얼대던 아이가 심심한 게 뭔지 궁금해하는 모습(<심심해 심심해>) 등이 그렇다. 작가는 그 비결이 일상 속의 꾸준한 관찰에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앉을 때 다리모양을 어떻게 하고 앉는지, 아이가 쭈그리고 앉을 때 뒤에서 팬티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 등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면서 메모합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그 사람‘다움’을 결정하니까요.”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시로 노트에 그려넣는데, 그의 작업 노트는 70여권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시타케 그림책의 또다른 장점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있으려나 서점> <아빠가 되었습니다>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등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펴내기도 했다. 마흔 살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기 전, 그는 어른들이 보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바 있다.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자신의 작품 <있으려나 서점>을 들어보이고 있다. 주니어김영사 제공
이에 대해 요시타케는 “그림책의 테마를 정할 때 어른이나 아이가 모두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한 권의 책이라도 그게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책이 되도록 만듭니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즐길 수 있으려면 공통 부분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일상 속의 사소한 일들입니다. 예컨대 <이유가 있어요>를 만들 때 습관이나 버릇, 거짓말 등을 주요 테마로 삼았는데,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다 갖고 있는 것이거든요.” 이때 “아이와 어른이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서로 다르므로,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을 아이의 언어로 번역하고,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나는 뭘까’ 생각해보게 만들고 싶다면, 대놓고 ‘나는 뭘까’ 질문을 던져선 성공하기 어렵다. 일단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아이가 자기 일을 대신 시키려 ‘가짜 나’를 만드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면 아이는 ‘가짜 나’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뭘까’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겪었잖아요. 그러니 아이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은 누구나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요시타케의 작품 속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은, 요시타케 본인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 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자신의 그림책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니어김영사 제공
<있으려나 서점>은 ‘책이 내리는 마을’,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등 책과 서점에 대한 온갖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그림책이다. 이 책에서도 나타나지만, 요시타케는 간담회 동안 “어렸을 때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책과 서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본 책을 어른이 되어서 다시 보면 또다른 즐거움을 얻는다”며, “두 번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의 장점”이라고 했다. 특히 그림책은 일반적인 책들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고 깊어서, 그럼 장점이 더욱 두드러진다고도 했다.
“어렸을 때 제가 좋아했던 책은 스토리가 있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찾아볼 수 있는 도감 같은 것이었어요.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펼쳐지는 <까마귀네 빵집>(고슴도치)이란 책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가서 ‘빵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래서 처음에 그림책을 만들 때 ‘좋아하는 것만 넣고 싫어하는 것들은 빼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업이 굉장히 즐거웠고, 사람들이 그걸 함께 즐기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미디어가 많아지면서 서점에 가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요시타케는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다”며, 이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있으려나 서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점을 좋아하고 자주 간다”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서점으로 “책을 추천해주는 센스가 있는 직원이 있는 서점”을 꼽았다. “인터넷에서는 내가 관심 있는 책들만 보여주지만, 서점에 가면 직원분이 자신의 잣대에 따라 내가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추천해주잖아요. 그런 것이 참 좋습니다.”
요시타케는 “절대로 대상을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는 자신만의 작업 원칙도 공개했다. 실제로 첫 책 <이게 과연 사과일까?>를 만드는 동안 한 번도 사과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대학 다닐 때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을 잘 못해서 혼이 많이 났는데, 아예 보지 않고 그리면서부터 더 잘 그리게 됐다”고 했다. “만약 소방차를 안 보고 그리려고 하면, 처음엔 이게 어떻게 생겼더라 할 겁니다. 그런 뒤에 소방차를 실제로 보면, 뒤에 사다리가 붙어 있어서 소방차처럼 보이는구나 등 ‘그것다움’을 나타내는 특징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죠. 제 그림책을 잘 보시면, 그것과 비슷한 무엇이지 그것 자체인 그림은 거의 없어요. 사람 얼굴 그림도, 누구하고도 닮지 않은 얼굴이라서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얼굴이지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그림 주니어김영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