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임금-몽상, 그 너머를 꿈꾸는 최고임금에 관하여샘 피지개티 지음, 허윤정 옮김/루아크·1만3000원
플라톤의 마지막 저작 <법률>에서 크레타 사람인 클레이니아스, 스파르타 사람인 메길로스, 그리고 ‘손님’이라고만 불리는 아테네 사람은 ‘마그네시아’라는 가상의 나라를 이상적인 법치 국가로 건설하는 사고 실험을 벌인다. 여기서 플라톤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테네 사람은 “빈부의 차이가 분쟁(stasis)이나 분열(diastasis)을 초래하기 때문에, 입법가는 마땅히 빈부의 한계를 공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그네시아는 이주자들에게 땅과 집을 똑같이 나눠주는데, 누구든 이 기본적인 할당분의 4배가 넘는 부를 축적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20세기 중반 인류는 불평등을 줄이는 ‘예외적인’ 시기를 구가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불평등이 다시금 급격히 확산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크레디트스위스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2017년 중반 상위 1%의 갑부들이 전 세계 부의 50.8%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미국 다음 가는 불평등 국가다. ‘세계불평등 데이터베이스’의 최근 현황을 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43.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미국(47%, 2014년 기준)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보다 높은 수치다.
▣ 관련기사 1 : “한국, 상위 10% 소득집중도 대다수 선진국보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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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스위스 취리히 시내에서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기업 내 임금격차가 12배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지하며 ‘1 대 12’라는 글자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끝내 부결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과연 이렇게 폭주하고 있는 불평등에 다시금 ‘고삐’를 죌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미국의 노동 전문 기자인 샘 피지개티는 저작 <최고임금>에서 ‘최고임금’을 제안한다. ‘최저임금’이 최하위층의 소득에 하한선을 정하는 정책이라면, 최고임금은 최상위층의 소득에 상한선을 정하는 정책이다. 우리에게도 아주 낯선 개념은 아니다. 2013년 스위스에서 기업 내부 임금 격차가 12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가 부결된 소식이 전해진 바 있고, 2016년에는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가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로 정하고, 법인이 소속 임직원에게 이를 초과하는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소득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최하위층 소득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으로, 최저임금이라는 정책 수단이 이를 대표한다. 둘째는 최상위층 소득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인데, 얼핏 보면 최고임금이 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은이는 최고임금은 세번째 방법, 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최고임금이 “최저임금과 연동”된다는 점에 주안점을 둔다.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이 둘 다 존재하는 세상은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을 착취하려는 강한 동기가 약화되다가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플라톤이 말했던 ‘빈부의 한계’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글을 써온 샘 피지개티. 미국 정책연구소의 특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곳에서 운영하는 ‘불평등’(Inequality.org)의 공동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출처 정책연구소
지은이는 이런 제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충실히 짚는다. 19세기 독일 태생의 철학자 펠릭스 애들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에 100% 과세율을 적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주장은 꽤 공감을 얻어, 1차 대전 이후 최고임금 개념이 미국에서 법안으로 구체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자들의 권력은 끊임없이 정치의 빈 틈을 공략해, 애초 설정된 높은 과세율을 꾸준히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1963년 91%였던 최상위 소득층의 세율이 1965년 70%로, 1982년에는 50%로, 1988년에는 28%까지 떨어졌다.” 이런 과세율의 하향 곡선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예외적인 시기’를 만들어낸 20세기 평등주의자들의 성공은, 사실은 절반에 그쳤던 셈이다.
지은이는 ‘부자들의 역습’은 소득의 ‘재분배’만을 목적으로 삼았던 정책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비롯했다고 짚는다. “소득 재분배는 불평등을 일으키는 경제를 주어진 상태로 간주하고, 이런 경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귀결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정했다.” 이런 ‘재분배’의 한계를 보완하려면, 애초 불평등이 덜 초래되도록 만드는 ‘사전분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 가운데 최고경영자 등이 가져가는 소득에 제한을 두고, 이를 최저임금과 연동시킨다는 최고임금 아이디어는 바로 이런 ‘사전분배’의 맥락에서 나왔다.
19세기 최고임금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독일 태생의 철학자 펠릭스 애들러.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고임금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공공지갑’(public purse)이다. 현실 경제에서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은 끊임없이 교차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민간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정부가 젠더, 환경 등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기업들과 계약하지 않거나 페널티를 주고 있는 것처럼, 공공 계약과 발주에서 ‘급여 비율’을 주된 기업 평가의 가치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고임금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거액의 임원 연봉을 고집하려는 기업은, “정부 사업 계약이나 세금 우대, 지원금 따위를 외면해야 한다.”
‘최고임금’이라고만 하면 굉장히 급진적인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핵심 아이디어인 ‘급여 비율’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수단으로 적극 검토되고 있다. 2013년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이런 흐름의 선두에 있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발의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은 상장 기업들로 하여금 최고경영자와 중간 직원의 급여비율을 매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4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상원의원들은 최고경영자와 직원 간 급여비율 차이가 작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 사업 계약 입찰에서 특혜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포틀랜드시는 2018년부터 최고경영자와 중간 직원 간 급여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그만큼 법인세를 올려받기로 했다.
2013년 11월, 기업 내 임금 격차를 12배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스위스 베른과 취리히에서 이를 지지하는 ‘1 대 12’ 펼침막을 집집마다 걸어놓은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은이는 최고임금 아이디어가 결코 ‘몽상’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정치적 실천 과제라고 역설한다. 그 가운데 여러가지 의문들도 해소해준다. ‘소득만이 아닌 자산까지 분배해야 한다’는 급진 좌파의 지적에 대해서는, “‘슈퍼리치’를 아예 없앨 순 없지만, 그들의 소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눈에 띄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박살난다’,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이전할 것이다’ 등의 주장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들어가며 어떤 근거도 없다고 밝힌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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