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린 앤서니 지음, 이재경 옮김/반니·1만9800원 2012년 미국에서는 ‘캡슐형 세제’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알록달록한 사탕 혹은 젤리를 닮은 세제 캡슐은, 보기에 귀엽고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에 세제를 채우는 절차를 없애주는 등 사용도 편리했다. 하지만 출시 뒤 6살 미만 어린이들이 무심코 캡슐을 집어먹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는 45분마다 미 전역의 독극물통제센터 가운데 한 곳에 이런 어린이 세제 캡슐 사고 신고가 접수됐다. 언뜻 ‘혁신적 디자인’으로 보인 세제 캡슐이,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1억달러를 들여 새로 지은 프랭클린 카운티 법원 청사는, 계단을 투명한 유리로 만드는 바람에 치마를 입은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렸다. 계단 아래에 서면 계단 위에 있는 사람들의 속이 보였기 때문이다. 법복 안에 거의 매일 원피스를 입는 줄리 린치 판사는 2011년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축 건물을 개장하면서 이용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도 있다니 놀라워요.” 대학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자인 지은이는,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물건의 디자인에 디자이너가 의도하든 아니든 어떤 편향이 녹아 있다고 본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몰이해하고 무감각한 디자인들은 심리, 사회, 문화, 세대 간의 간극을 넓히고, 이 간극은 특정 젠더, 연령, 체형에 편파적 특혜를 강화한다”는 데 있다. 특정 집단에 심각한 부상, 심지어 죽음까지 야기하는 ‘나쁜 디자인’도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불완전하게 디자인된 가구나 TV가 엎어지는 사고로 미국에서만 어린이가 2주에 1명꼴로 숨진다.” 디자인에 성인 편향이 숨은 탓이다(왼쪽). 한편, 연사의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연단의 경우, 큰 키를 가진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연사가 키가 작거나 휠체어를 쓰는 경우 “하찮은 존재”처럼 보이도록 한다.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학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의 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시절 포용적 디자인의 연단 설계, 개발, 제작, 설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때 만든 연단(오른쪽)은 키 127~213㎝에 맞춰 높이 조절이 가능하고 왼손잡이 연사,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 없이 쓸 수 있다. 출처: 왼쪽 ⓒAndrea Cecelia 오른쪽 ⓒKathryn Anthony 반니출판사 제공
대부분의 화장실 세면대는 어린이 키에 맞지 않다. 아이 엄마인 조이 섬튼은 극장 의자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공중화장실용 접이식 발판 ‘스테픈 워시’를 디자인했다. 저자는 이 제품이 “어린아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고, 부모에게 숨 돌릴 틈을 준다”며 가족친화적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Step’n Wash Inc./Alison Shirreffs 반니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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