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오타 줄리아’ 함께 출간 장상인·안병호 작가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 신부의 행적’(2011년)을 쓴 사람입니다. 지난 3년간 ‘오타 줄리아’를 연구하고 있는데 마침 포털에서 선생님의 칼럼을 보고 연락을 드립니다.”
지난해 여름 유난히 무더웠던 날, 이렇게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두 작가의 인연이 1년 만에 ‘공저’로 결실을 맺었다. <오타 줄리아>(이른아침 펴냄)를 함께 써낸 장상인(68)·안병호(67·안토니오) 작가는 최근 “친구가 됐다”라고 소개했다.
오타 줄리아는 420년 전, 임진왜란 때 3살로 일본에 끌려간 소녀로 열도에서 지금까지도 ‘동정녀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실존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종군 신부를 데리고 와 조선과 가톨릭을 처음 연결시킨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로 ‘줄리아’ 세례명을 받아,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서는 ‘최초의 조선인 여성 가톨릭 신자’로 꼽히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존재가 여러 계기로 알려진 인물의 이야기를 두 사람이 새삼 다시 써낸 이유는 무엇일까?
임진왜란때 포로 끌려간 ‘3살 소녀’
도쿠가와 이에야스 ‘박해·회유’ 맞서
유배됐던 섬에선 해마다 ‘줄리아 제’ 70년대 알려져 세운 절두산 묘비 최근 철거
1부 일대기·2부 현지답사 ‘철저 고증’
‘남몰래 기도하던 줄리아 석등’ 확인하기도
“2007년 가을 오타 줄리아가 유배됐던 절해고도이자 청정한 관광명소로 유명한 도쿄도 인근 고즈시마(神津島)에 갔다가, ‘조선의 왕녀이자 임진왜란 포로’ 출신이라는 기록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연재하던 ‘블로그’에 소개한 게 시작이었어요. 섬 주민들이 수백년째 해마다 5월 세번째 일요일에 ‘줄리아 제’를 올리며 성녀로 섬긴다는 얘기를 듣고 2008년 기념제 때 맞춰 다시 방문해 참관기를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고요. 2014년 일본 유명 극단(와라리좌)에서 전국 순회공연하는 뮤지컬 <오타 줄리아>를 쓰시마에 가서 직접 관람한 후기를 썼는데, 그게 바로 안 작가가 읽은 칼럼이었죠.”
장 작가는 1986년 대기업 홍보 담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백차례 현해탄을 건너다니고 있는 ‘자타공인 일본통’이다. 특히 30년 가까이 ‘특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일본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와의 인연 덕분에 그는 한국 언론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본 구석구석을 직접 탐방하며 ‘살아 있는 문화체험기’를 소개하고 있다.
두 저자는 책에서 ‘1부 전기’와 ‘2부 현지답사’로 나누어 400년 전의 기록들은 물론 최근의 학계 연구성과까지 모두 반영했다.
“목숨을 건 치열한 신앙, 남다른 덕행과 봉사, 절조와 동정을 지켜낸 용기, 포로의 신분에서 최고의 귀부인이 되었다가 유배지로 쫓겨나 생을 마감한 인생역정까지 ‘오타 줄리아’는 역사소설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이야기, 그 자체였어요.”
경북 포항대학에서 평양 출신의 수필가이자 소설가 한흑구 선생의 사사를 받은 안 작가는 1957년 포항 송정리에 나환자진료소(송정원의 전신)를 여는 등 1920~70년대 반세기동안 한국인 구호사업에 헌신했던 프랑스인 루이델랑드(남대영) 신부의 일대기를 펴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또 다른 가톨릭 인물 ‘오타 줄리아’에 관심을 갖고 이번 책에서 ‘오타 줄리아의 삶’을 정리했다. “에도 막부의 절대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주교 금지령을 내린 뒤 오타에게 배교하고 첩실이 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지상의 왕을 위해 하늘의 왕을 불편하게 할 수 없다’며 성모 마리아처럼 동정을 지키겠다고 맞섰어요.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숭고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줍니다.”
‘1950년대 고즈시마 유형자 묘지의 묘탑이 줄리아의 것으로 인정되면서 추모행사가 새로 시작됐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71년 ‘제2회 줄리아제’에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한국의 대주교 일행도 방문해 기념미사를 올렸다. 그해 10월 일본에서 줄리아의 묘토를 전달해와 절두산 순교성지의 김대건 신부 동상 왼편에 안장했다. ‘오다아’(吳多雅) 쥬리아’ 묘비명이 새겨졌다.’ ‘이성구 감독의 영화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1973), 소설 <성녀 줄리아>(1983·일본 작가 모리 노리꼬 원작), <오타 줄리아>(1996·일본 작가 후데우치 유키코 원작), 표성흠 작가의 장편 <오다 쥬리아>(2007년) 등이 출간됐다.’
그런데 두 사람은 “기존의 통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 몇 가지 밝히고자 책을 썼다”고 했다. “오타 줄리아가 40년 동안 고즈시마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거기서 숨진 게 아니였어요. 천주교를 박해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후 유배에서 풀려나 일본 본토에서 생활했다는 기록을 확인했어요. 고즈시마에 있는 무덤이 사실이 아닐 개연성이 높아진 거죠. 줄리아가 순교했다거나 복자로 시복되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절두산의 묘지를 최근 철거했으니까요.”
특히 2008년부터 혼자서 일본내 오타 줄리아의 유적지들을 찾아다닌 장 작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슨푸성이 있던 시즈오카의 사찰 호다이인에서 ‘기리시탄(크리스천의 일본식 발음) 줄리아의 석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2층짜리 석등의 아랫단에 성모 마리아상이 새겨져 있는데, 여러 서양 선교사의 글에 오타 줄리아가 슨푸성 시절 기도단을 만들어 한밤에 몰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와요.”
‘일본 문화전문가’인 장 작가가 책을 낸 목적은 또 한가지가 있다. “오타 줄리아의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는 극단에서 한국에서도 상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일 합작으로 한다면 지난 10여년새 꼬일대로 꼬인 두 나라 관계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오타 줄리아’를 매개로 친구이자 공저자가 된 장상인(왼쪽)·안병호(오른쪽) 작가. 사진 이른아침 제공
도쿠가와 이에야스 ‘박해·회유’ 맞서
유배됐던 섬에선 해마다 ‘줄리아 제’ 70년대 알려져 세운 절두산 묘비 최근 철거
1부 일대기·2부 현지답사 ‘철저 고증’
‘남몰래 기도하던 줄리아 석등’ 확인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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