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은 나의 것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 지음, 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1만2000원
죽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소망하는 죽음은 그리스어로 ‘편안한’(eu) ‘죽음’(thanatos)이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열전>에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신속하게 고통없이 (…) 축복받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적으며 이 말을 썼다. 오늘날 이 말, 곧 ‘존엄사’(안락사)는 끊임없는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은 2016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그리스의 언론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가 생전에 출간한 책이다. 대장에서 처음 발견된 그의 암은 손쓸 여지도 없이 간으로, 위장으로, 골반 뼈로, 비장으로 전이됐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예정된 죽음을 코앞에 둔 지은이는 법과 종교와 의료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데 반발했고, 미디어를 통해 “죽음의 권리”, 곧 존엄사할 권리를 주장했다. 지은이는 끝내 스위스에 있는 기관을 찾아 치사약을 처방받고 스스로 투여하는, ‘비조력 안락사’를 선택했다.
‘비조력 안락사’를 선택한 그리스 언론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의 생전 모습. 출처 벨리오스 페이스북
이 짧은 책은 삶의 끝자락에서 ‘자유로서의 죽음’을 갈구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삶은 가장 고독한 사람에게조차도 집단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죽음은 명백히 개인적인 일이자, 그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에게 죽음의 권리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에 해당한다. 죽음의 권리야말로 인간을 속박하는 종교적, 사회적 구속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낼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자유의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축도(縮圖)다.”
무엇보다 ‘존엄하게 죽을 자유’를 막아서고 있는 이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언론인으로서 그의 냉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의사들이 전능한 ‘작은 신’ 행세를 하는 동안 의료비 총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 이들은 히포크라테스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실은 시장을 지배하는 ‘마몬’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한계를 정함으로써 권력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사회는 통제 하에 있게 된다. 만일 죽음의 권리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면 현재 유지되고 있는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통제할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이야말로 어디에나 현존하는 보수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생명을 앞세우면서도 수많은 학살에 기대온 서구 문명의 위선적 역사에서부터 경제적 계산으로 인간의 생명을 대하는 현대 시장만능주의까지, 거침없는 그의 비판은 폭넓다.
그의 바람은 단 하나, “‘에토이모타나시아’(etoimothanasia, 죽음을 맞을 준비)의 나날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권리를 스스로 꾸려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직 내 죽음의 권리를 요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확신이 지금껏 나를 강하게 지탱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수동적인 것을 혐오한다. 개인의 자유가 언제나 나의 본태적 종교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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