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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는 소망한다, 내가 선택한 죽음을

등록 2018-11-23 06:01수정 2018-11-26 11:05

나의 죽음은 나의 것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 지음, 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1만2000원

죽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소망하는 죽음은 그리스어로 ‘편안한’(eu) ‘죽음’(thanatos)이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열전>에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신속하게 고통없이 (…) 축복받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적으며 이 말을 썼다. 오늘날 이 말, 곧 ‘존엄사’(안락사)는 끊임없는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은 2016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그리스의 언론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가 생전에 출간한 책이다. 대장에서 처음 발견된 그의 암은 손쓸 여지도 없이 간으로, 위장으로, 골반 뼈로, 비장으로 전이됐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예정된 죽음을 코앞에 둔 지은이는 법과 종교와 의료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데 반발했고, 미디어를 통해 “죽음의 권리”, 곧 존엄사할 권리를 주장했다. 지은이는 끝내 스위스에 있는 기관을 찾아 치사약을 처방받고 스스로 투여하는, ‘비조력 안락사’를 선택했다.

‘비조력 안락사’를 선택한 그리스 언론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의 생전 모습. 출처 벨리오스 페이스북
‘비조력 안락사’를 선택한 그리스 언론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의 생전 모습. 출처 벨리오스 페이스북
이 짧은 책은 삶의 끝자락에서 ‘자유로서의 죽음’을 갈구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삶은 가장 고독한 사람에게조차도 집단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죽음은 명백히 개인적인 일이자, 그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에게 죽음의 권리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에 해당한다. 죽음의 권리야말로 인간을 속박하는 종교적, 사회적 구속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낼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자유의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축도(縮圖)다.”

무엇보다 ‘존엄하게 죽을 자유’를 막아서고 있는 이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언론인으로서 그의 냉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의사들이 전능한 ‘작은 신’ 행세를 하는 동안 의료비 총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 이들은 히포크라테스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실은 시장을 지배하는 ‘마몬’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한계를 정함으로써 권력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사회는 통제 하에 있게 된다. 만일 죽음의 권리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면 현재 유지되고 있는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통제할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이야말로 어디에나 현존하는 보수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생명을 앞세우면서도 수많은 학살에 기대온 서구 문명의 위선적 역사에서부터 경제적 계산으로 인간의 생명을 대하는 현대 시장만능주의까지, 거침없는 그의 비판은 폭넓다.

그의 바람은 단 하나, “‘에토이모타나시아’(etoimothanasia, 죽음을 맞을 준비)의 나날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권리를 스스로 꾸려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직 내 죽음의 권리를 요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확신이 지금껏 나를 강하게 지탱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수동적인 것을 혐오한다. 개인의 자유가 언제나 나의 본태적 종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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