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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응원을 표명하는 독서

등록 2018-11-23 06:00수정 2019-04-19 09:54

[책과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골든아워 1, 2
이국종 지음/흐름출판(2018)

‘과잉의 시대’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친다. 출판 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1년이면 무려 8만여 종의 새로운 책들이 출간되고, 출판 시장만큼 신제품 간의 경쟁이 치열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매일 약 220종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 권의 책이 서점 매대 위에 놓여져 잠깐 얼굴이라도 보여주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가에 꽂혀 그나마 제목이 새겨진 등짝이라도 보여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온라인 서점 매출 비중이 높아지고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신간 홍보 경쟁은 점점 더 지능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각축전이 벌어지는 출판 시장에서 어떤 한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교실 교수.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교실 교수.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일상을 수학으로 해석하는 데 탁월한 수학자 조던 엘런버그는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스티븐 호킹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가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 팔린 엄청난 베스트셀러였지만, 이 책을 끝까지 제대로 읽은 독자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사놓고 읽지 않는 책 지수’를 일컬어 호킹 지수라고 불렀다. 엘런버그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시간의 역사>의 호킹 지수는 6.6%로 100명 중 6.6명 정도만 제대로 책을 읽었고, 수년 전 피케티 열풍을 불러온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호킹 지수가 2.4%였다. 베스트셀러가 많이 팔리는 책이지만 반드시 많이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책을 산다.

최근 주요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가 있는 <골든아워>의 호킹 지수는 얼마나 될까? 날카로운 눈빛과 건조한 말투, 언뜻 보면 이국종 교수는 그리 호감 가는 인상의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두 권 합쳐 800쪽이 넘는 분량의 <골든아워>는 사람을 살리는 칼잡이로서의 엄숙한 비장함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제된 분노가 담긴 의료일기이면서,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의 분투기다. 이국종 교수의 글은 <칼의 노래>의 문장처럼 거침없고 힘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처럼 쓸쓸하면서 아프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거나 아픈 상처에 공감해주는 ‘힐링 에세이’가 점령한 대한민국 출판 시장에서 <골든아워>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골든아워>가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홍순철 제공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홍순철 제공

‘과잉의 시대’에 소비자들은 더는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하지 않는다. 요즘 소비자들은 응원하고 지지하고 공감한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로 특정 브랜드와 물건을 소비한다. <골든아워>의 인기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는 이국종 교수의 신념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책을 사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치밀하고 탄탄한 내용에 감탄하며 누군가에게 다시 책을 권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고 정의로워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 <골든아워> 독서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이번주부터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가 베스트셀러를 통해 출판 트렌드를 살펴보는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를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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