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지음/푸른역사·2만원 “꼴은 이래도 500년 이어져 온 나라요.” 구한말이 배경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의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 대사의 일부다. 애신이 강조한 것처럼, 조선은 15세기 이후 세계사에서 찾기 어려운 긴 시간을 버틴 나라다. 이 왕국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혹은, 500년을 버티고도 끝내 망국에 이른 원인은 무엇일까. 널리 알려져 이해하기 ‘편리한’ 답은 붕당 정치의 변질이다. 학문과 정치 등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해온 유학이 고담준론이나 정략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게 문제라는 해석이다. <조선, 철학의 왕국>은 명쾌한 답변 대신에 17~18세기 선비들의 ‘호락논쟁’을 좇으며 조선의 사상·정치적 전환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호락논쟁은 노론 학자들이 인간 마음의 본질을 주제로 토론하며 시작됐지만, 국왕, 정치인, 중인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시대의 ‘핫한’ 공론이었다. 논쟁은 성리학과 붕당 정치의 성숙과 균열을 대표한다. 저자는 국사학도들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은 호락논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논쟁의 내용이 난해하다고 미리 실토한다. 본문의 홀수장(1·3·5·7장)에는 역사, 짝수장(2·4·6·결론)에는 철학과 이론을 교차 배치하여 독자의 이해와 편의를 도모했다. 부제에 ‘이야기’라고 강조했는데, 사상과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스토리텔링의 힘이 <미스터 션샤인> 못지않다. 이민족, 중인, 여성 등이 활약하며 시대가 역동하는 가운데, ‘지금, 여기’ 조선에 맞춤한 사상을 고민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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