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권력의 주체가 시민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형벌권의 한계원칙을 적용받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 제품 판매자가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근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과 성고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부 조사로 밝혀졌다. 국방부 장관이 공식 사과한 7일, 성폭행 피해자 김선옥씨는 “국가가 국민을 짓밟는 폭력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되고 전두환 등 5·18 부역자는 모두 단죄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학살의 최종 책임자인 전두환을 이제 와서 단죄할 수 있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전두환은 이미 무기징역형을 받은 뒤에 사면되지 않았나?
“전두환을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김성돈(56)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지난해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온 국내 형사법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다. 법조협회(회장 대법원장)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법조> 10월호에 그의 논문 ‘국가폭력과 형법, 그리고 헌법’이 실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행해진 모든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 헌정한 이 논문에는 법조문 한 줄 고치지 않고도 전두환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담겨 있다.
국가폭력을 행사한 공무원이 있다. 그가 지시하거나 실행한 국가폭력은 정부 차원에서 저질러졌기에 실체가 잘 밝혀지지 않는다. 실체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판단을 받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버리든지, 아니면 일사부재리(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의 원칙이 법적 처벌의 길을 막는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법치국가의 원칙은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같은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국가폭력의 주체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원칙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국가폭력의 주체들은 형법상의 불법만이 아니라 헌법상의 불법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핵심적인 논리다.
국민은 헌법을 통해 오직 국가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특권을 줬다. 공권력은 오로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 공권력이 국민에게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면, 헌법이 준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중으로 불법을 저지른 국가폭력의 주체들에겐 일사부재리와 공소시효라는 법치국가의 원칙들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다.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법을 고칠 필요 없는 법 해석의 문제라 지금이라도 검찰에서 이 논리에 기반해 전두환은 물론 최근 진상이 드러난 광주 성폭력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시민에게는 유한 책임을 묻지만, 국가엔 무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법 적용이 이렇게 이뤄진다면 특히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 본다. ‘정권이 나를 지켜주겠지’라는 생각에 공무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언젠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주변 헌법학자들에게 논문을 보여줬지만, 헌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2016년 말에 백남기 농민이 투병하다 돌아가신 서울대병원 주변을 출퇴근길에 오가면서 나도 뭔가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국가폭력을 연구하게 됐다.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자백>(2016)을 제작하고 출연한 최승호 피디(현 문화방송 사장)의 모습도 자극이 됐다.”
군인권센터와 민주화운동 민주열사 유가족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죄 고발장을 접수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 교수의 이 논문은 최근 그가 형법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 중 하나다. 그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과 인공지능도 형법의 행위 주체로 볼 수 있다는 삼부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출간한 <기업 처벌과 미래의 형법>(성균관대학교출판부)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여기서 그는 기업도 형법상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특히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 기대, 기업도 인간처럼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 독자적으로 행위하는 단체 행위자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백혈병 사건의 삼성전자나, 세월호 사건의 청해진해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옥시 모두 기업 자체는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배상금 부과부터 정부 사업 수주 금지, 영업정지, 보호관찰 등 다양한 형사제재를 부과할 수 있고, 가중처벌을 할 수도 있다.”
세 주제 중에선 인공지능이 형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 날이 오는 게 시간상으로 가장 멀지만, 오히려 주변의 관심은 가장 뜨겁다. 논리는 기업 법인과 비슷하다.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자유의지와 불법 인식 여부를 떠나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들이 머신러닝·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해가며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범위가 점점 확대될수록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 본다. 김 교수는 3년 안에 <국가폭력과 미래의 형법>, <인공지능과 형법의 미래>란 제목의 책을 낼 예정이다.
“다른 학계도 그렇지만 우리 형법학계에서도 논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폭력 관련 논문은 영문으로도 번역해서 외국 학자들의 평도 들어보려 한다. 아르헨티나처럼 국가폭력이 극심했던 나라들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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