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춤추고 싶다-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장동선·줄리아 F.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아르테·1만7000원
몸이 움직이지 않는 시대다. 뇌가 발보다 손가락과 밀접한 디지털 세대는 소셜미디어, 즉 간접현실에 오래 머무른다. 생생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생’은 아닌 현실. 반대로 아날로그의 핵심은 몸의 움직임과 감각이다. 발을 디뎌 공간을 이동하고, 손으로는 마우스 이상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디지털의 대기를 은근하게 맴도는 아날로그 향수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뇌의 주 역할은 운동능력을 관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존’하기 위해 뇌를 진화시켰고, 뇌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잘 움직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뇌는 춤추고 싶다’.
두 지은이는 춤추는 과학자다. 뇌과학자 장동선과 영국 신경과학자 줄리아 크리스텐슨은 ‘사회적 자아’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만나 저녁마다 탱고와 스윙댄스를 추다가 이 책을 함께 쓰기로 마음을 모았다. 춤추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뇌는 운동과 더불어 마음의 장기이기도 하다), 춤이 있는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관한 최신 연구결과를 쉬운 말로 정리했다. 춤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아직 초보 단계다. 이제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춤의 신비가 담긴 이 책에 따르면, 춤은 어떤 운동보다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생명의 묘약”이다.
뇌는 세상을 리듬의 형식으로 이해한다. 신경세포 간 리듬이 일치될 때 감각정보들은 하나로 인지된다. 사람도 서로를 리듬으로 이해한다. 공감을 이룬 두 뇌파의 리듬은 약 6~7초 차로 싱크된다. “춤이란 다름 아닌 세상의 리듬에 나를 맞춰가는 연습”이다. 아르테 제공
건강의 묘약. ‘신경가소성’이 나이가 들 때까지 학습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신경가소성이란 신경계가 환경과 학습에 따라 유연하게 재조직되는 성질을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인터벌 트레이닝’ 즉 훈련과 휴식을 규칙적으로 번갈아 함으로써 강화되는데, 지은이들은 대표적인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춤을 꼽는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걷고, 뛰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점프하고, 그냥 서서 쉬기도 하는 게 춤이기 때문이다(정지도 스텝의 한 종류다).
단순한 피트니스·체력 훈련과 춤 훈련의 차이를 들여다본 실험이 흥미롭다. 미국·독일 연구진이 주로 60살 이상을 대상으로 6개월가량 관찰한 결과 “춤춘 사람들에게서 근육운동과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의 새로운 신경 네트워크 형성이 두드러졌다. 주의력과 기억력, 유연성, 복잡한 움직임과 연관된 부위들이 더 커졌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새로운 스텝과 익숙하지 않은 율동을 이용한 복잡한 춤 훈련이 새로운 신경세포들의 생성을 더 효과적으로 촉진한다고 추정한다. 춤이 독서, 테니스, 체스, 악기 연주와 비교해 치매 발생을 76%나 더 감소시키며, 파킨슨병 환자에겐 탱고가 운동능력·공간지각력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소개된다.
행복의 묘약. 춤을 출 땐 도파민이 생성된다. 성공을 경험할 때 더 많이 분비되는 이 신경전달물질은 긍정적인 감정과 새로운 의욕을 느끼게 한다. 춤은 반복을 통해 ‘작은 목표’를 계속 달성해가는 과정이다. 뇌는 학습경험이 쌓일 때마다 보상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성공의 기억을 코딩하는 것이다.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직접 추는 것과 같은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는 과학의 발견은 이 책에서 가장 매혹적인 대목이다. 관객은 무용수와 같은 박자로 호흡하며, 상대방의 몸짓을 따라 할 때 활성화하는 ‘거울신경세포’가 감상 중에 활발해진다고 한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뇌에서 따라 해봄으로써 타인을 이해한다. 춤을 보기만 해도 공감력이 커진다는 얘기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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