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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일성, 소련이 뽑은 임시 지도자였나

등록 2018-11-08 18:06수정 2018-11-09 09:36

김일성 이전의 북한
-1945년 8월 9일 소련군 참전부터 10월 14일 평양 연설까지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이휘성) 지음/한울·2만5000원

김일성 북한 주석은 언제, 어떻게 남북 분단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을까. 70년 전의 일이고 부정확한 기억과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 질문의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러시아 출신 연구자의 책이 나왔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한국명 이휘성·30)는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러시아인이다. 그는 학창시절 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뒤 2011년 서울로 이주해, 석사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마쳤다. 2017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북한 전문 매체인 <엔케이뉴스>(NK News)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쓴 <김일성 이전의 북한>은 1945년 8월9일 소련군의 참전과 뒤이은 해방부터 10월14일 김일성의 평양 연설 때까지 67일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특히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에 해제되기 시작한 소련의 기밀 자료 중 그동안 무시되거나 연구되지 않았던 자료들, 개인적으로 입수한 러시아 연구자 안드레이 란코프의 인터뷰 등을 종합한 점이 눈에 띈다.

소련의 미하일 칸 소령(왼쪽)과 메클레르 중령(오른쪽)이 붉은 기 훈장을 받은 김일성 대위를 축하하고 있다. 출처 메클레르 개인 소장
소련의 미하일 칸 소령(왼쪽)과 메클레르 중령(오른쪽)이 붉은 기 훈장을 받은 김일성 대위를 축하하고 있다. 출처 메클레르 개인 소장
지은이는 김일성이 소련 붉은군대에 소속된 군인이었기에 소련군 장성들의 지지를 받아 북한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다. 란코프가 1980년대 말 진행한 미공개 인터뷰 가운데 북한 지도자 후보로 거론됐던 유성철의 인터뷰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후보자가 3명이 있었는데, 바로 조만식, 박헌영 그리고 김일성이었어요. (…) 외교관과 정보원들이 한편이 되고 장군들은 다른 편이 되어 경쟁을 시작했죠. 로마넨코, 시트코프 등 장군들은 김일성이 원래 소련군 대위여서 지지했는데, 결국 시트코프가 주도하는 장군파가 이겼어요. 이들은 어떤 방법을 이용해 스탈린까지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은 김일성을 승인하도록 설복했어요.” 란코프가 경성(서울)의 소련 영사관에서 일한 외교관의 아내 파냐 샵시나와 진행한 인터뷰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우연히, 이것은 완전히 우연한 것이었거든요. (…) 인맥이 모든 것을 결정했죠. 군인들이 잘 알았던 김일성이 바로 눈앞에 보여서 그를 뽑았는데, 김일성이 아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던 것을 다시 말씀드려요.”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각인된 1945년 10월의 연설 이후에도 소련에선 한동안 김일성을 임시 지도자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1945년 10월 연설 이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 말렌코프 등에게 보내진 한 편지에선 여전히 “김일성을 지도자로 임명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확정하지 않았은 걸로 읽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또 1946년 3월 소련쪽이 승인해 미소공동위원회에 제출하려고 한 ‘조선 통일 민주정부’ 구성원의 목록에서도 김일성은 ‘군무상’에 불과했다.

1945년 10월14일 김일성이 북조선 인민 앞에 처음 등장한 연설 무대를 촬영한 사진에서 김일성 가슴의 붉은 기 훈장과 태극기, 소련 국기, 소련 장교들을 삭제한 사진이 2015년 7월3일 <로동신문>에 실렸다. 한울 제공
1945년 10월14일 김일성이 북조선 인민 앞에 처음 등장한 연설 무대를 촬영한 사진에서 김일성 가슴의 붉은 기 훈장과 태극기, 소련 국기, 소련 장교들을 삭제한 사진이 2015년 7월3일 <로동신문>에 실렸다. 한울 제공
지은이는 1993년 러시아 잡지 <노보예 브레먀>에 ‘투마노프’라는 필명으로 쓰인 한 관계자의 칼럼에 근거해, 1947년 말에 되어서야 김일성이 최종적으로 북조선 지도자로 임명된 걸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만약에 신탁통치 계획이 실패하지 않았거나 미국이 많이 양보해서 좌파·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통일 정부를 승인했다면, 소련측이 김일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일 조선의 지도자로 승인할 수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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