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조선총독부30년사(상·중·하)
박찬승 김민석 최은진 양지혜 역주/민속원·각 권 6만원
일본 식민지 시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한국인들이 그때를 되돌아볼 때, 그 초점은 일제에 맞선 저항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상대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한 연구는 부족할 수밖에 없던 심리적 이유다. 그 공백을 틈타 자라난 건 일제 통치 논리를 내면화한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극우 역사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총독부가 기록한 총독부의 역사서가 80여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31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박찬승 한양대 교수(사학과)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3명의 제자와 7년간 번역에 매달려온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전3권)가 이제 빛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정 25년사>와 함께 <시정 30년사> 중에서 미나미 총독 시기를 번역한 책이다. <시정 25년사>는 조선총독부가 1935년 경술국치 25년이 되던 해를 ‘기념’해 자신들의 활동을 정리한 관찬역사서다. 그 후 5년 만인 1940년 제7대 총독 미나미 지로는 <시정 25년사>를 요약한 뒤 자신의 통치기까지 담아 <시정 30년사>를 다시 냈다. 박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이 책들을 “총독부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 대내적으로 이를 합리화하고 뒷받침하고, 대외적으로는 이를 미화하고 선전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번역한 이유는 일본의 지배 정책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 안에 내면화된 일본의 논리를 분별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를 낸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한 연구기관에 이 책을 포함해 총독부의 각종 자료들을 번역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제의 시각에서 쓴 책을 왜 번역하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연구자들이 볼 책을 왜 번역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은 식민지 시기 통치의 논리가 담겨 있는 필독서임에도 어려운 대목들이 많아서 연구자들도 읽기가 힘듭니다.” 2012년 박 교수는 대학원 수업에서 <시정 30년사>를 학생들과 읽고 있었다. 마침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번역사업에 지원을 해준다고 하여, 아예 번역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 박사 과정 학생이던 김민석(현 사학과 강사), 최은진(현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 양지혜씨와 함께 번역을 시작했다. 매달 모여 번역해온 원고를 돌려 읽고, 전체를 박 교수가 다시 검토했다.
박 교수는 특히 총독의 ‘유고’, 즉 담화문은 문장이 까다로워 번역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책이 다루는 분야가 광업, 임업, 농업, 철도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 걸쳐 있고, 지금과 용어가 달라 그냥 읽어서는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일일이 조선어 사전, 일본어 사전 등을 찾아 뜻을 밝혀야 했다. 일제가 왜곡하거나 미화한 사실관계들을 찾아서 이를 바로잡는 각주를 달아 독자들이 총독부의 의도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이 번역서가 일찍 나왔으면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같은 문학작품도 더 풍부하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일본 식민지 시기를 오래 연구해온 박 교수도 이 책을 번역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1920년대 통치를 이전의 무단통치와 대조해 ‘문화통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컬처’가 아니고 ‘문치교화’라는 말의 줄임말인 걸 이번에 번역을 하며 알게 됐습니다. 문치교화는 조선인들을 무력이 아닌 문(文), 즉 교육과 선전을 통해 머릿속을 바꿔 동화를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문화통치가 192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일었던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그것과는 관련이 없었다는 거죠.”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최근에 번역해낸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를 들어보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된 역주 작업으로 박 교수가 얻은 ‘대가’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받은 연구비는 번역을 시작할 때 이미 몇백만원씩 나눠 모두 공역자들에게 건넸다. 출판사에서 주는 인세 3%마저 책으로 받기로 해서 모두 10질을 받았을 뿐이다. 이마저 2질씩 공역자들과 학교에 나눠줘, 김 교수가 이 번역으로 받은 물질적 대가는 책 2질뿐이다. 책은 300질만 찍었다.
“대다수 대학교처럼 우리 학교에서도 번역은 연구 업적에 전혀 반영이 안 됩니다. 책 저술은 논문 2편, 영어 논문은 논문 3편으로 인정해주지만 번역은 아무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인문학 쪽에서 기초가 될 번역서나 읽을 만한 학술서가 안 나오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이기에 식민사관의 논리를 잘 보여주는 조선사학회의 5권짜리 <조선사 대계>나 제6대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의 일기 같은 중요한 자료도 번역되지 않고 있다고 박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정년이 3년밖에 안 남았거든요. 이번에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일제 시기 교육사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돼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박 교수의 눈에는 이 책 안에 숨겨진 수많은 연구 주제가 보였다. 조선총독부와 본국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총독부 관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조선인들이 받았던 태형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산파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우리 학계에 단편적 연구는 많지만 이를 집대성한 연구를 아직 만들어내질 못했어요. 이제는 후학들이 연구를 해나가야 할 텐데, 거기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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