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월시 에콰도르 시몬볼리바르 안디나대학 교수. 출처 학교 누리집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부(2007년 1월~2017년 5월)는 집권 뒤 학문-지식-교육의 ‘근대화’에 목표를 두고 미국·유럽·중국·한국 등에서 ‘과학 지식’ 체계를 에콰도르로 이식해오는 데 주력했다. ‘지식의 메카’란 콘셉트로 ‘야차이(Yachay) 기술실험대학’(야차이)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한국 정부는 여기에 5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는데, 특히 경제발전을 위한 ‘지식정보산업단지’를 표방하며 글로벌 고등교육기관과 연구소들을 모아놓은 한국의 인천 송도 모델이 야차이 프로젝트의 주된 모델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야차이는 “공립대학의 붕괴를 이끌고 인문사회과학의 무용함을 웅변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에콰도르 시몬볼리바르 안디나대학의 캐서린 월시 교수는 야차이의 사례를 들어 실용과학에 매몰된 고등교육 및 인문학의 위기와, 그것이 제국-자본-서구-합리성이란 ‘보편’의 이름을 앞세워 전지구적으로 전이되고 있는 현상을 비판한다. 월시는 오는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개원 40년을 맞아 개최하는 ‘문명 대전환기의 인문학 구상’ 국제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할 예정이다.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네트워크 ‘근대성/식민성 그룹(Grupo modernidad/colonialidad)의 일원인 월시는, 오늘날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들이 서구 세계가 만들어낸 ‘야만적 자본주의’의 공범으로 ‘비인간화된 인문학’을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병폐는 이른바 ‘글로벌 남반구’에서 주로 가시화하는데, 남미의 대학들이 서구의 ‘보편적 지식’ 모델을 ‘근대화’란 이름으로 이식받으며 지역적 삶을 파괴하거나 오염을 증대시키는 다국적 기업의 연구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10년 동안 벌어진 멕시코 마약전쟁에서 죽거나 사라진 사람들의 시체가 공립대학 연구실에서 실험용 표본으로 나타났다는 월시의 지적도 충격적이다.
기본적으로 월시의 비판은,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깊이 빠져버린 대학에서 인문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긴다. “비판적 사고는 오늘날 경제적 질서에서 장애물로 간주되고 있다.” 더 나아가, 야차이의 사례에서 보듯 ‘비인간화’ 경향을 낳는 서구의 보편적 지식 모델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학문은 과연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아마존 지역의 채굴산업을 경제 엔진으로 삼고 있는 에콰도르는 채굴 지역에 실용학문에 충실한 학교를 세웠는데, 여기서는 영어와 함께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친다고 한다. 중국이 채굴산업에 가장 큰 투자국이기 때문이다.
월시 외에도 2명의 국외 학자들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맡는다. 인도 출신인 비나 다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문학 작품 분석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기”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볼프강 메르켈 독일 베를린사회과학센터 교수는 정치 참여의 비대칭성 등 지구화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 요소들을 분석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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