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신화와 전설
존 스튜어트 엮음, 신재성 옮김/도서출판b·2만6000원
“역사에서 모든 것은 이성에 따라 발생한다”, “테제부터 출발해 안티테제를 거쳐 진테제에 이르는 3단계는 (…) 헤겔 철학의 본질에 해당한다”, “헤겔은 프로이센 군주제를 점점 더 이상화하는 쪽으로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정치철학에 대한 깔끔하고 간명한 설명들은 주로 헤겔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일조해왔다. 그렇게 쌓인 이미지들은 헤겔이 전체주의 사상가였다거나,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선구자였다거나, 역사의 종말을 선고했다거나, 전쟁을 찬양했다거나 하는 신화 또는 전설로 이어진다.
1996년 처음 출간된 <헤겔의 신화와 전설>은 이처럼 헤겔에게 덧씌워져 있던 오해와 낙인들을 걷어내고, 헤겔 사유를 정당하게 읽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책이다. 21편의 논문을 한데 모았는데, 각 논문들은 헤겔에 대한 다양한 신화와 전설을 논박하는 과정 속에서 헤겔의 전체적인 모습에 접근해갈 수 있도록 길잡이 구실을 한다.
게오르크 헤겔이 1828년 베를린대학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프란츠 쿠글러 그림.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엮은이 존 스튜어트가 쓴 서문은 영미권과 유럽권에서 헤겔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지 계보학적으로 보여준다. 영미권에서 헤겔의 평판을 손상시키는 데 큰 구실을 한 인물로는 레너드 홉하우스와 칼 포퍼를 꼽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헤겔과 그의 시대>(1857)를 쓴 루돌프 하임이 헤겔에게 ‘프로이센의 공식 철학자’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프랑스에서는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목적론에 가까운 알렉산더 코제브·알렉산더 코이레의 작업이 헤겔에게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신화와 전설을 깨는 것은 역시 맥락에 충실한 독해다. 예컨대 “현실적인 모든 것은 이성적”이란 말로 퍼져나간 헤겔의 경구는 ‘현존하는 국가(압제적인 프로이센)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공격당했으나, 이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헤겔의 ‘사변적 명제’를 잘못 읽은 결과라 한다. 헤겔은 경험적 현실에서 벗어나 추상적·규범적인 진술에만 갇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런 장치를 썼는데, “이 ‘사변적 명제’는 행동의 강령이지 묵인의 변호가 아니다.” 곧 헤겔은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작업을 통해, 되레 “현존하는 국가를 평가할 기준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월터 카우프만은 선택적 인용, 자의적 ‘영향’ 평가, 개념 뒤섞기 등 칼 포퍼의 헤겔 왜곡을 하나하나 들춰낸다. 그는 이런 태도야말로 포퍼가 헤겔에게 덧씌우려 했던 ‘전체주의적’이란 비판에 더 적절하게 들어맞는다고 꼬집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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