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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독실한 신앙인, 동시에 너무나 페미니스트인

등록 2018-10-18 20:07수정 2018-10-22 14:10

페미니스트 ‘교회 언니’의 신앙상담
거짓 위로에 나를 방치하지 않는 법
“용기가 당신을 자유케 하리라”
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 -종교와 페미니즘의 동행
이동옥 지음/현암사·1만6000원

관계가 몰고 올 먹구름이 두려워서는 어떤 사랑도 할 수 없다. 잊기 쉽지만, 사랑은 결코 행복을 보증하지 않는다. 사랑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곳은 성숙이다. 그래서 혼란과 고통이 반드시 수반된다. 그런데 여기서, 정신 차리고 잘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다. 기꺼이 쓰라림을 감수하는 실행과, 참담한 상황에 스스로를 방치하는 실수는 아예 다르다. 전자는 사랑하는 자의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학대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

‘사랑’의 종교라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이 구분이 쉽지 않다. 특히 여성 신자에게 더 그렇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데, ‘너희’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는 목소리들. 진리와 부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처방전이 나왔다. “당연한 방황의 끝에서, 용기가 당신을 자유케 하리라.”

가톨릭 신앙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이동옥 홍익대 교양교육원 초빙교수가 <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를 펴냈다. 그가 직접 만난 여성들의 교회 생활을 생생하게 담았다. 글의 초점은 ‘무엇이 자유이고 아닌지’에 대한 분별력을 심는 데 맞춰졌다.

교회는 달라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세속과 참 비슷하다. 대놓고 ‘여성을 차별한다’고 말하는 종교는 없지만 현실은 따로다. “종교는 인간 세계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중심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교회에는 일부 “친근감의 표시로 손을 잡거나 껴안고 안마를 해달라는 남성 성직자나 수도사”와 그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자 정성스럽게 안마를 하는 여성 신자”가 있다. 또 “사제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신부를 유혹한 나쁜 여성’으로 억울하게 비난받은 젊은 여성, 성직자로부터 반말을 듣거나 의견이 무시당할 때 분노하는 중노년 여성 신자”가 드물지 않다.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원제는 Radical Grace, 2015) 포스터. 낙태, 피임, 동성애,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교황청에 반기를 든 수녀 세 명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성인권영화제 제공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원제는 Radical Grace, 2015) 포스터. 낙태, 피임, 동성애,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교황청에 반기를 든 수녀 세 명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성인권영화제 제공

나의 ‘나 됨’, 고유한 개성을 잃으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재미가 없으니까. 개성을 잃는 방법은 간단하다. 판타지의 대상이 되면 된다.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인 미모의 기준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로 판타지 삼은 결과다. 교회에는 성모 마리아라는 모성의 전형, 착한 여자여야 사랑받는다는 판타지가 있다. 신심이 깊은 여성일수록 착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기도한다. 그 사이, 내 이웃은 폭력을 당하면서도 종교 때문에 더욱 이혼하지 못하고, 성폭력으로 임신을 해도 낙태를 반대하는 교회 입장 때문에 심신에 족쇄를 차는데도.

환상에 갇힌 기도를 듣는 하느님은 “여성을 보호하거나 위로하지 못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나아가 “이러한 환상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성역할 규범과 질서를 강화”하는 데 가세한다. “종교가 내세우는 이상은 세상의 법을 넘어서는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종교는 눈물을 닦아주는 척하면서 구조적인 폭력, 가부장제를 은폐하고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종교의 남성중심적 규범과 지침은 “자기 대면을 방해하는 장애물”, “거짓 위로”라고 책은 분별해준다.

왜냐하면 일체의 “환상은 여성에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명하게 공유된 대로, 남성 판타지에 따라 집 안에 머무르게 된 “여성에게 집은 휴식처가 아니라 노동의 공간일 뿐”이었다. 이러한 근대식 사랑은 결국 여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좌절된 사랑의 모델을 신앙에서 다시 마주하는 여성들에게 교회는 여전히 무조건적 섬김을 요구하지만, 지은이는 “전통이 폭력, 불의를 내포한다면, 여성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전통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바꿔 말한다.

사랑은 고생고생하는 극기훈련이 아니다. 멋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자유롭고 즐거워야 한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면이 마구 헝클어진 상태로는 내 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고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 지은이는 교회에서조차 가부장제의 억압에 방치된 여성 신앙인의 경험을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누군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턱이 저절로 들린다. 서로 관심으로 호명할 때 인간은 이렇게 존엄해진다. 동시에 위로이기도 하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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