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지음/휴머니스트·2만2000원 10여년 전 <문화방송>(MBC)에서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이란 추리사극이 방영된 적이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범죄 수사에 당대의 과학 지식과 심문 기법이 동원됐고,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사람의 변사는 중대 사건으로 다뤄졌다. <100년 전 살인사건>은 조선시대 의학사와 법의학을 천착해온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가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부제)를 보여주는 책이다. 100년 전 조선에선 누가 왜 사람을 죽였을까?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그 모든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살인사건보고서가 바로 ‘검안(檢案)’이다. 살인 사건이 보고되면 즉시 조사관이 현장에 출동에 주검을 검시하고 범죄 혐의자 및 주변인들을 심문해 상부에 보고했다. 검안은 크게 주검에 대한 법의학 소견서인 시장(屍帳)과 관련자 심문 기록인 공초(供招)로 짜이는데,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검안만 500여 건, 2천여 책에 이른다. 지은이는 이 기록들을 토대로, 살인 사건의 수사 및 처리 결과, 나아가 각각의 사건들이 보여주는 당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들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1899년 전북 남원의 한 마을에서 여섯살배기 아이와 성인 남자가 배가 갈리고 간이 꺼내진 채 살해된 엽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남원 군수가 사건을 조사하는 와중에 한 사람이 목을 맸고, 다른 한 사람은 앓던 병이 덧나 죽었다. 아이의 죽음은 문둥병(한센병)을 낫고 싶었던 환자의 소행, 성인의 죽음은 아이 아비의 복수극이었다. 범인의 동생들도 몹쓸 병을 앓았는데, 한 명은 복수가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이는 두려움과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돼 숨졌다. 1906년엔 인천 영종도에서 야소교(기독교) 신도들이 불상을 훼손했다가 주민들의 ‘민회’에서 구타를 당했는데, 그 중 1명이 두 달 뒤 숨졌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사인이 구타냐, 지병 치료차 복용한 서양식 약물이냐를 놓고 놓고 4검까지 진행되면서 엎치락 뒤치락 결론이 뒤집혔다. 전통의 관성과 근대의 물결이 부딪힌 상징적 사건이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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