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만화/한겨레출판·1만5000원 덜커덩덜커덩, 또 지하철 소리를 녹음한다. “소리가 높고 좋아.” 암만 들어도 소음인데, 준이는 2호선 출발음인지 4호선 도착음인지까지 구분한다. 소리만으로 열차 모델명과 회사 이름과 제작연도까지 딱 맞춘다. 달팽이관이 덜 발달된 많은 이들에게 소음뭉치로 들리는 이 소리가 어떻게 준이에겐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릴 수 있을까. 그는 어느날 ‘지하철 환상곡’ 시리즈를 작곡했다. 자작곡을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음들이 격정적으로 내달리다 이완하며 아득한 세계로 안내하며 감동을 준다. 삼겹살, 냉면, 바람, 고궁산책 등 매일 일기 쓰듯 만든 곡이 800여곡. 준이는 소리 세계가 특별히 발달한 사람이다. <준이 오빠>는 판소리와 피아노로 세상과 소통하는 ‘발달장애’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지슬> <풀> 등 역사만화를 그려온 김금숙 작가가 판소리 수업에서 만난 준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일상을 그렸다. 오빠에게 집중된 관심과 돌봄으로 인해 결핍을 느낄 수 있는 동생 윤선이를 화자로 내세워 가족의 내면을 깊이 있게 포착했다. 준이 오빠가 ‘피아노 병창’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소리꾼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족의 일상사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의 연속이다. “다른 엄마들이 난리”라며 초등 입학 2주 만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학통보를 받아 ‘무릎 호소’를 하는가 하면, 수시로 준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대응하도록 엄마는 욕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준이가 초등학교 때 접한 판소리는 말문이 트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문이 되었다. “갈까 보다~.” 오빠의 <춘향가> 대목을 들으며, 윤선은 “매번 오빠에게 그 문을 열고 우리가 사는 세계로 오라고만 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어쩌면 준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피아노로 통역하며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견 없이 그 문을 가만 열어주기만을, 이 책은 권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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