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김서령 작가가 서울 효자동 ‘갤러리 우물’ 앞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여자전-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를 쓴 작가 김서령씨가 6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2.
고인은 수년째 암과 투병하면서도 맑은 눈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응시하고 글로 기록해왔다. 지난해 3월 펴낸 에세이집 <여자전>(푸른역사)에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 온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라는 부제를 붙인 데서도,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깊고 웅숭깊은 세계를 감각해내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김 작가는 지난 9월 중순까지도 서울 종로구 효자동 갤러리 우물에서 ‘김서령의 다정하고 고요한 물건들의 목록 물목지전(物目誌展)’이란 전시회를 열었으나, 최근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위 전시회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토기와 자기, 가구, 소품 180여 점을 선뵈면서 <한겨레 21>과 한 인터뷰에서 “아끼고 매만져 살짝 피가 돌기도 했던 어여쁜 생명들”이 새 인연을 만났으면 한다는 듯을 밝혔었다. “애착을 버린다는 것은 추상적인데, 물건을 버리는 게 가장 구체적인 연습”이라고도 했다. 작가는 이미 이 즈음 남몰래 세상과의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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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작가는 경북 안동 김씨 3대 종가 중 하나인 의성 김씨 집성촌에서 나고 자랐다. 경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80년대 중반부터 <샘이 깊은 물> 기자로 일하면서 인물 인터뷰의 매력에 눈이 띄여 여러 매체에 인터뷰 칼럼을 썼다. “300명인지 500명인지” 헷갈릴 정도(한겨레 21 인터뷰)라고 했다. 천생 글쟁이였고 이야기꾼이었다. <김서령의 家>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등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특히 <여자전>은 2007년 초판에 이어 2017년 개정판을 내면서 독자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9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열흘간의 전시를 마친다. 두어번 외엔 그 공간에 가지 않았다. 대신 누가 어느 물건을 가져갔다는 기록만은 빼놓지 않고 미소띠며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제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이름과 인연을 지우고 자유와 질병을 함께 누리며 원하는 대로 행주좌와할 수 있을 것인가. 한마리 늙은 자칼처럼? ㅋㅋ”
버림 혹은 떠나보냄의 의미를 사유하며, 자유와 질병을 함께 누리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소망한 이 글이 결국 작가가 세상에 남긴 많지 않은 마지막 육성 중 하나가 됐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떠나보내고 영원한 자유를 얻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장후영(EBS 피디), 딸 이영(서초구청 근무)씨. 며느리 이미솔(EBS 피디), 사위 이관용(엘지화학 근무 )씨, 동생 기현(빙그레 상무)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2227-7590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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