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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물을 알고 싶었던 인간의 ‘삽질사’

등록 2018-10-04 20:08수정 2018-10-05 10:04

심해에 진실을 숨긴 뱀장어
알고 보니 정력적인 판다 등
신화화·의인화한 동물의 실체
오해의 동물원-인간의 실수와 오해가 빚어낸 동물학의 역사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곰출판·1만9500원

우리는 동물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동물의 생태를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동물을 잘 알게 됐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된다. 오랜 시간 수많은 자연과학자의 ‘삽질’을 통해 조금 알게 됐을 뿐이다. 인간은 동물을 ‘정신적 감옥’에 가둬 신화화하고 의인화하며 왜곡하고 있다. <오해의 동물원>은 그 흑역사의 진실을 기록한 책이다.

인류사 최고 천재 중의 한 명으로 꼽을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 사람이다. 뱀장어와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반짝거리던 철학자, 동물학의 아버지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는 뱀장어를 무성 생물로 보고 진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뱀장어의 번식 과정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상식으로는 가당치 않은 해설이다. 또 다른 후대 자연과학자들도 뱀장어가 바위에 몸을 비벼대 번식한다거나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는다는 오류를 쏟아냈다. 심해에 진실을 숨기고 있는 뱀장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의 실체를 알지 못한 거야 당연한 결과 아닐까. 일부러 눈을 가린 경우도 있다. 사랑스러운 판다의 이미지는 일종의 미신이다. 짝짓기에 서투르고 입맛이 까다로워 대나무만 먹는, 무능하지만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종으로 널리 소개돼 있다. 그러나 판다는 현재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생존자일 수 있다. 판다는 사실 정력적이라고 한다. 배란기가 매우 짧지만 발달한 후각으로 때를 놓칠 위험은 적다. 또 대나무를 씹어먹으면서 발달한 뺨의 근육은 사자와 재규어만큼이나 힘이 세다.

판다는 짝짓기에 서투르고 입맛이 까다로워 대나무만 먹는, 무능하지만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종으로 널리 소개돼있다. 그러나 판다는 현재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생존자일 수 있다. 판다의 이미지가 그렇게 각인된 건 동물원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판다는 짝짓기에 서투르고 입맛이 까다로워 대나무만 먹는, 무능하지만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종으로 널리 소개돼있다. 그러나 판다는 현재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생존자일 수 있다. 판다의 이미지가 그렇게 각인된 건 동물원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그렇다면 왜 우리는 판다에게 일방적으로 끌리는 걸까. 답은 동물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처럼 앉아 나뭇잎을 먹고 있는 판다, 친구보다 사육사를 더 애정하는 판다, 엉덩이로 깔고 앉아 새끼를 죽인 판다 등 판다에 대한 신화는 동물원에서 출발한다. 무해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믿고 싶고 그래야 불편함 없이 판다를 귀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 역시 동물을 오해하는 지름길이다. 과거 과학자들도 펭귄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정하고 연약해 보이는 펭귄의 모습이,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를 돌봐주고 싶은 열망을 자극한 걸까. “턱받이와 앞치마를 한 어린아이처럼 뒤뚱뒤뚱 걷는 모습”에 매료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펭귄이 가진 신체의 희극성은 의인화되어 펭귄을 스타 동물로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어리숙한 이미지에 가두었다.

착해 보이는 펭귄을 두고 미국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펭귄 가족을 모범적인 기독교 가족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펭귄은 기독교적 삶을 따르지 않는다. 85%가 매년 다른 배우자를 선택한다. 물론 사람과 같은 이유로 배우자를 떠나는 건 아니다. 황제펭귄은 둥지를 따로 짓지 않기 때문에 짝짓기 철이 돌아올 때마다 정확한 만남의 장소가 없어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동성 펭귄 가족도 있고 짝짓기로 유혹해 물건을 훔치는 펭귄도 있다고 하니 사람 세계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게 동물의 세계이다.

저자는 동물 복지적 측면보다 동물의 신비를 파악하려 한 자연과학자의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 되새김질하는 위가 없어 풀과 나뭇잎도 잘 먹지 못하는 타조에게 가위나 못 같은 철물을 먹인 자연과학자, 수정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개구리에게 맞춤 속옷을 제작해 입힌 신부, 박쥐의 능력을 찾기 위해 눈을 지지고 안구를 빼내 밀랍으로 채우고 온몸을 니스로 코팅하고 귀를 자르고 혀를 뽑는 과학자의 열정을 기록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과학이 진보했다는 것이다. ‘헛똑똑이’ 자연과학자들의 분투기를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미지의 동물을 정복하려던 과욕의 역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저자 루시 쿡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로 나무늘보를 사랑해 나무늘보협회를 창설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책에서는 뱀장어, 판다, 펭귄 말고도 비버, 나무늘보, 하이에나, 독수리, 박쥐, 개구리, 황새, 하마, 말코손바닥사슴, 침팬지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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