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지음/니케북스·1만9000원 주말 오후 마트 계산대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내 앞엔 냉동식품·라면·탄산음료가 담긴 장바구니를 든 남성, 뒤엔 카트에 채소·과일주스·와인을 실은 여성이 있다. 식재료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맛, 그 지적 유혹>의 저자 정소영씨는 ‘분석적인 상상력’을 동원하면 생활 패턴과 취향, 직업까지도 추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먹는가’는 옷차림과 말투와 함께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문학작품 속 17개의 이야기를 통해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인물들의 사연을 입체적이고 생명력 있게 분석한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에서 팬케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남편 닉과 크레이프를 만들고 와인을 마시는 아내 에이미의 갈등은 미국 사회에서 심화하는 계층·지역 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토요일>에서 신경외과 전문의 헨리 퍼론이 가족 모임을 위해 최고급 재료를 써서 생선스튜를 준비하는 과정은 현대의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남성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기괴한 꿈을 꾼 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폭력적 지배와 남성 권력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고 저자는 읽어낸다. 지은이는 문학작품에 등장한 음식을 통해 주인공의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등을 섬세하게 짚고, 우리 일상에서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음식을 통한 문화적 계급의 구분, 저항, 자아해방 등의 코드를 풀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먹은 음식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점심은 어디 가서 뭘 먹지?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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