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말여, 뭣보다도 손이 곧 그 사람이여. 사람을 지대루 알려믄 손을 봐야 혀.”
까맣고 거친 데다가 주름까지 깊이 패인 어르신들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 노심초사했던 그들의 인생이 말을 걸어온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이야기꽃)는 일흔을 넘긴 노인들만 살고 있는 충남 부여 송정마을 어르신들의 손과 인생을 함께 담은 그림책이다. 책을 펼치면,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밀화로 그려낸 어르신의 손 그림과 손의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남긴 말들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단단히 삽자루를 쥔 손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평생 농사를 지었어. 논이 산 너머에 있응게 밤중에 물 대러 다녔지. 가다가 보면 저수지에 물귀신이 둥둥 떠 온단 말여. 까딱하면 홀려서 따라 들어가는 거여. 그럴 때 삽자루 든 손을 불끈 쥐면, 배짱이 생겨. 평생 그러구 살었어. 손 불끈 쥐구.”(79살, 할아버지)
아로니아 한 웅큼을 받친 두 손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뭣 혀서 돈 벌어야 애들 목구녕에 밥 넣어줄까, 고것 하나만 생각허구 살었어. (…) 이게 그렇게 몸에 좋다네. 약이다 생각하고, 나 혼자 다 먹을겨.”(76살, 할머니)
“평생 이 손을 움적거려 식구들 먹여 살렸다”는 79살 할아버지는 잠시도 두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지푸라기라도 꼬고 있어야 맘이 편하다고 한다. “손이 움적거리믄 맘이 가라앉는당게. 평생 그렸어.” “어려서 쫌 괴팍지게 놀았”다는 79살 할아버지는 사고를 막다가 다친 손을 보여주며 “이 손이 수십 명 살린 손”이라 자랑한다. 자식에게 “한 가지라도 맛있게 혀서 뽀로로 부쳐 주구” 싶은 81살 할머니의 손은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넘어져서 손목이 부러진 뒤로 영 손을 못 쓰겄어. 그냥 전화로 소식이나 주고받으야지”라는 말에 코끝이 찡해온다.
송정마을 어르신들은 2015~2018년 사이 ‘그림책 마을’ 사업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직접 그림책으로 만들어낸 바 있다.
(?<한겨레> 2017년 8월28치 22면♣?]) 이 책은 당시 ‘그림책 마을’ 사업을 진행하느라 몇 년 동안 송정마을을 드나들며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그들의 인생을 채록했던 김혜원 작가(글쓴이)와 최승훈 작가(그린이)가 힘을 합쳐 만들었다. 두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르신들은 쉼 없이 손을 움직여 무언가 일을 하셨다. 그 손들이 참 아름다워서, 그 이야기들이 참 좋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옮겼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이야기꽃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