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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으로 읽는 달의 신화, 달의 과학

등록 2018-09-24 11:07수정 2018-09-27 09:05

<한겨레> 책 기자가 고른 달 관련 책 5

선녀와 토끼 상상 넘치는 보름달
서양에선 밤·어둠 겹쳐 ‘악마의 상징’
달착륙 반세기…행성탐사·우주여행
여전히 문학·예술 영감의 원천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 픽사베이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 픽사베이
뭐니뭐니 해도 추석의 최고 풍경은 가을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예부터 달은 신화와 상상의 원천이었으며, 아이들에겐 선녀와 토끼가 사는 동화의 세계였다. 동양의 음양 사상에서 해와 남성은 양에, 달과 여성은 음에 해당했다. 우리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호랑이에 쫓기던 오누이가 동아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 오빠는 해가 되고 누이는 달이 됐다.

추수를 마친 가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요과 감사의 계절이다. 하지만, 보름달을 보는 인식만큼은 정반대다. 동양, 특히 한국인들은 보름달을 숭배해왔다.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 대보름은 큰 명절이다. 고대 문명권의 수메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달은 창조설화와 관련된 신성하거나 긍정적인 존재다. 반면 서양, 특히 유럽인들은 보름달(full moon)을 악마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만 뜨면 광기와 난폭함이 넘치는 늑대인간으로 변한다. 영어 단어 ‘루나(lunar)’는 ‘달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인데, 여기서 파생된 ‘루나틱(lunatic)’은 명사로 ‘미치광이’, ‘정신 이상자’, 형용사로 ‘미친’, ‘터무니없는’, ‘정신 나간’ 같은 부정적 뜻을 갖는다.

달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비교해 설명한 책과 자료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막 출간된 신간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정기문 지음/ 책과함께)도 관련 내용이 한 장에 걸쳐 나온다. 최초의 배경을 추론해보면, 바빌로니아 신화를 계승한 조로아스터교가 세상을 선한 신 아후라마즈다와 악한 신 아리만의 대립, 빛과 어둠의 대결로 이해하면서, 밤에 뜨는 달이 어둠의 지배자라는 생각을 품었을 수 있다는 것.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하고 태양신 숭배까지 이어지면서 해와 달에 대한 상반된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을 터이다.

그리스 신화에선 셀레네, 아르테미스, 헤카테 등이 달의 여신이다. 이 중 헤카테는 대지와 바다를 지배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암흑, 마법등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다. 위 책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를 좀 더 읽어보자.

“헤카테는 저승세계의 여왕으로서 한밤중에 지옥의 개들을 데리고 나와 십자로나 세 갈래 길에 나타났”는데, 이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고대인들은 그런 곳에 악마와 마녀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제물을 바쳐 그들을 달래야 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헤카테가 달의 여신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사람들은 그녀가 완전한 자태를 드러낼 때, 즉 보름달이 뜰 때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달과 밤의 이미지가 일치되면서, 헤카테는 점차 악마의 영역을 관장하는 유령과 마법의 여신으로 변했다는 것.

보름달과 박쥐 이미지. 서양에선 보름달을 악마와 관련해 인식한다. 픽사베이.
보름달과 박쥐 이미지. 서양에선 보름달을 악마와 관련해 인식한다. 픽사베이.
원시 시대부터 대다수 지역 사람들이 달을 여성과 결부시킨 것도 흥미롭다. “원시시대 남자들은 생리하는 여성과의 성관계를 두려워했으며, 자신들이 성행위를 포기하고 있는 동안 밤마다 달이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생각했다.”(파울 프리샤우어, <세계풍속사> 상권, 까치, 1991) 여성의 생리 주기(약 29.5일)이 달의 주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도 여성과 달을 연관 짓는 관념을 굳혔다. 생리의 다른 한자말은 월경(月經), 순우리말로는 ‘달거리’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지금까지의 설명을 축약한 구절이 있다. “(피처럼) 붉은 달(blood moon)이 뜨는 날, 헤카테는 저승의 개를 이끌고 나타나 저주의 마법을 펼친다.”

로마 신화에서 달의 여신은 루나(Luna), 디아나(Diana, 다이애나), 주노(Juno, 유노)가 있다. 이 중 루나는 앞서 언급한 영어 낱말 형용사 루나(lunar)의 어원이다. 옛 소련의 무인 달탐사 ‘루나 프로젝트’(1959~1976)의 명칭도 달의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또 주노는 영어 단어 ‘June(6월)’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969년 7월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걷고 있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누리집.
1969년 7월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걷고 있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누리집.
지구(왼쪽)과 달의 크기 비교.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왼쪽)과 달의 크기 비교.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건조한 과학적 서술만 하면, 달은 지구에서 38만4400㎞ 떨어져 지구 둘레를 27.3일에 한 바퀴씩 공전하며,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같은 까닭에 지구에선 항상 한 쪽면만 보이는 지구의 유일한 위성이다. 지름은 3470㎞로 지구의 4분의 1,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작고 예쁜 ‘별’이다. 엄밀히 따지면 별(star)은 태양처럼 스스로 불타며 빛을 내는 붙박이 항성을 말한다. 항성 주위를 도는 지구 같은 천체는 행성(planet), 달처럼 행성의 주변을 도는 꼬마 천체는 위성(moon, satellite)이라고 한다.

올해는 인간이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본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1968년 12월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8호가 세계 최초로 달 궤도 비행에 성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보고 돌아왔다. 그 이듬해인 1969년 7월에는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었다. 내년이면 인간의 달 착륙 반세기를 맞는다. 오늘날 우리는 상업적인 달 여행을 눈 앞에 둔 시대를 살고 있다.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행성 탐사 우주선은 화성을 넘어 목성, 토성, 천왕성 등 태양계 맨 끝까지 날아간다.

달로 날아가는 항아를 그린 중국 그림(1955년작).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달로 날아가는 항아를 그린 중국 그림(1955년작).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럼에도 동심 가득한 달 이야기나 달에 얽힌 신화는 여전히 우리 마음에 신비감을 자아내며 푸근한 느낌을 준다.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상아(嫦娥, ‘항아’로도 읽는다)는 달에 사는 여신이다. 항아가 달로 도망간 ‘항아분월(嫦娥奔月)’ 전설은 줄거리가 조금씩 다른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강은 이렇다. 항아는 천상에 살던 명궁수 예(?)의 아름다운 아내였는데, 둘 다 신이었다. 어느 날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세상이 온통 타 들어갔다. 예가 활을 쏘아 아홉 개의 해를 떨어뜨렸는데, 그 해들이 모두 천제(天帝)의 아들이었다. 천제의 분노를 산 예와 항아는 인간으로 격하돼 지상으로 쫓겨났다. 예는 해결책을 찾아 곤륜산의 여신 서왕모에게 불사약 두 알을 받아온다. 한 알씩 나눠 먹으면 지상에서 불로장생하고, 혼자 다 먹으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약이었다. 욕심이 생긴 상아는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간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천제가 상아를 두꺼비로 만들어 달에 가둬버렸다는 것. 중국이 ‘달 착륙’을 포함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우주 탐사 계획 ‘창어 프로젝트’의 명칭이 바로 ‘상아’에서 따온 것이다.

달은 문학·예술에서도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지구에서 달까지>(1865)란 제목의 소설에서 묘사한 달 여행은 오늘날 달 탐사선의 원리와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과학적이다. 초대형 대포를 이용해 인간이 포탄 같은 우주선을 타고 달로 날아간다는 내용인데, 발사 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 이용해 중력권을 탈출하기 위해 미국 영토에서 최대한 위도가 낮은 지점에 대포를 설치한다. 그러나 발사체가 엄청난 속도로 치솟는 과정에서 탑승자들은 지구 중력의 5배나 되는 압박을 받게 된다. 소설에선, 이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이 기절하고, 태우고 간 개는 두개골이 깨져 죽고 만다.

쥘 베른의 1865년작 공상과학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 프랑스어판 표지.
쥘 베른의 1865년작 공상과학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 프랑스어판 표지.

최근 몇년새 출판계에선 과학 책 붐이 일면서 물리학·생물학·우주과학·천문학·양자역학·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대중교양서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출간된 지 얼마 안된 신간들 가운데 몇 권 만 살펴봐도 우주여행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댈러스 캠벨 지음, 지웅배 옮김/ 책세상)는 “말 그대로 지구 바깥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우주여행 안내서”이다. 우주 탐사의 과거·현재·미래, 우주인의 실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담은데다, 우주과학·천문학·항공학 등의 전문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전해준다.

<인듀어런스>(스콧 켈리 지음, 홍한결 옮김/클)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연속 340일을 체류하며 미국인으로선 최장기록을 세운 우주인 스콧 켈리가 우주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지내는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말라붙은 땀 조각을 물티슈로 닦는 걸로 샤워를 대신하고, 소변을 증류해 식수로 마시고, 우주유영을 한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미국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첫 교양과학책이자 베스트셀러인 <코스믹 커넥션>(김지선 옮김, 사이언스북스)은 초판이 쓰인 지 45년 만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다. 태양계 및 외계행성 탐사, 외계 지성체 탐사 전략, 별과 삶 등 우주의 신비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펼쳐진다. 1부의 맨 처음 문장부터 시작해 일부만 음미해보자.

“50억년 전 태양에 불이 켜지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태양계에 빛의 봇물이 흘러들었다. 태양계 안쪽에 있던 불균질한 바위와 금속 덩어리 초기 행성들이 그 빛에 처음 잠겼다. (…) 초기의 대기는 아주 다양한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수소가 넘쳐났다. 분자의 충돌에서 더 큰 분자가 만들어졌다. 이 분자들은 화학과 물리학의 예외 없는 법칙에 따라 상호작용했고, (…) 이 분자들이, 상당히 놀랍게도, 바로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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