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주성하 기자가 전하는 진짜 북한 이야기
주성하 지음/북돋움·1만8000원
이제 남북한 정상이 군사적인 적대 관계를 종식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양 선언’을 내놓는 데에 이르렀다. ‘종전’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이 기세라면 남북한은 앞으로 서로 살을 부비며 밀접하게 살아가야 할 터다. 이는 우리가 그만큼 북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탈북자’로서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가 최근 펴낸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는 오늘날 북한의 실상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백과전서’라는 제목을 붙인 데에, 또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지은이의 말에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감의 원천은 평양 내부에 있는 취재원의 존재다.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시민이 전한 내용이며, 그들의 감수를 거쳤“으니 그만큼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의 상징인 김일성 광장의 모습. 대동강 넘어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북돋움 제공
한복을 입고 나들이 나온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 북돋움 제공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북한에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시장경제’가 구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다. 김정은 시대의 청년 세대를 ‘장마당(시장) 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며 실패한 국가 경제에 더이상 기댈 수 없게 된 북한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장마당을 개척했고, 이것은 오늘날 “북한 시장경제의 펌프”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2009년 단행했던 5차 화폐개혁과 그 실패다. 당국은 구화폐 100원을 신화폐 1원으로 바꾸고 1인당 교환 한도를 10만원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개인들이 축적한 돈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자, 주민들은 유례 없는 집단적 저항을 일으켰다. 지은이는 “당시 후계자로서 이를 지켜본 김정은은 집권 후 장마당에 대한 규제를 다시 풀어주고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이제 장마당은 전국적으로 480여개에 이르고 골목시장, 야시장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까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가전제품, 가구류, 의류 등 온갖 재화들이 거래되는 장마당에는 “고양이 뿔 말고는 다 있다.” 여기서 돈을 번 신흥 부유층은 ‘돈주’가 되어 벤츠를 몰고 고급 음식점에서 1000달러가 넘는 돈을 쓴다. 휴대전화의 보급과 함께, 지금은 ‘전문 배달원’이 전화 주문을 받고 채소, 나무에서부터 냉면, 맥주까지 집으로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 열풍까지 불어, 현재 평양 류경동에 있는 고급 아파트 가격은 30만 달러를 넘어섰을 정도. 2015년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와 2017년 완공된 려명거리에는 최신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최신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의 야경. 북돋움 제공
평양의 상업화 경향을 이끌고 있는 미래과학자거리의 모습. 북돋움 제공
이렇게만 보면 영락없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같지만, 정치 권력과 기묘한 공생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북한 체제의 특이점이 있다. 탈북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으로 ‘중앙당 간부와 법 관련 종사자’를 꼽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권력에 줄을 대야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뇌물이다. “남을 잡아넣을 수 있는 칼을 쥐거나”(단속), “도장을 틀어쥐거나”(각종 인허가), “직업을 지정해주는”(인사) 등 일상생활 속 권력들이 장마당 경제와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그 최상위에는 노동당을 정점으로 한 정치 권력이 있는 셈이다.
예컨대 과거엔 별 볼 일 없었던 노동당 민방위부는 장마당이 활성화하면서 그 힘이 커졌다고 한다.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1년에 15일 동안 적위대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므로, 훈련에 빠지고자 민방위부에 뇌물을 먹인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개인이 본인 명의로 사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인이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기관의 명의를 빌려야 하고, 그 기관의 책임자에게 이익금의 일부를 바쳐야 한다.” 지은이는 북한의 변화에 대해 “과거의 소련과 동유럽처럼 사회주의 붕괴 후 시장경제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중국과 베트남처럼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진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하며, 이를 ‘갈라파고스식 진화’라고 말한다.
평양 시내에 있는 동물원에서 주민들이 구경을 마친 뒤 나오고 있는 모습. 북돋움 제공
평양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모습. 북돋움 제공
결국 핵심적인 문제는 이런 북한의 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이냐다. 북한 사회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2014년 5월에 일어났던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걸린다. 부동산 투자 열풍에 따라 재건축한 23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져 300여명이 숨진 사고다. 옛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세우는 데 불과 1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런 과정에서 제대로 된 철근과 시멘트를 쓰지 않는 등 부실 공사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마저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이 자재를 빼돌려 술이나 부식물과 바꿔치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의 ‘삼풍백화점 붕괴’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이다.
지은이의 말처럼, 이미 평양은 “혁명의 수도가 아니라, 부자가 되려는 꿈이 지배하는 ‘욕망의 수도’”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한반도의 미래에서 과연 평양의 ‘욕망’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북한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남한의 ‘욕망’은 또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여러모로 깊은 고민이 드는 지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