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즐거움
-텔레비전의 작은 역사
크리스 호록스 지음, 강경이 옮김/루아크·1만9000원
철학자 하이데거는 텔레비전을 “멀리 떨어져 있음의 모든 가능성을 없애는 행위의 정점”에 있는 ‘외계의 사물’로 바라보았다. “거리를 폐기하는 경향이 머지않아 전체 소통 시스템을 장악하고 지배할 것이다. 인류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먼 거리를 움직이고 있다.” 그런 텔레비전은 알튀세르 식으로 말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도구”였고, 영상 소비사회에 들어서던 시대에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당신을 근사하고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실어가는 요술 양탄자”였다.
영국 문화비평가이자 킹스턴대학 예술사 교수인 크리스 호록스의 책 <텔레비전의 즐거움>을 읽다보면, 새삼 텔레비전이 집안을 채운 다른 가정필수품들과 아주 특별하게 달라 보인다. 따지고 보면 냉장고, 전기밥솥, 세탁기가 소설, 영화, 예술, 그리고 철학이나 정치에서 텔레비전만큼이나 유별나게 다뤄진 적 있었던가.
1920년대 이후 현재까지 등장한 다양한 텔레비전의 모양들. 루아크 제공
<텔레비전의 즐거움>은 기술문화의 역사이자 비평이다. 지은이는 현대인 삶의 굵직한 서사에 스며든 발명품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텔레비전 기술과 문화의 역사를 통해 묻고 말한다.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긴 시간여행을 하는 지은이는 텔레비전이 두려움과 욕망, 무시하면서도 환영하는 양면적인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꺼진 텔레비전 사물과 바깥 세상을 전하는 켜진 텔레비전이 다르듯이, 지은이에게 텔레비전은 물질적 존재이자 상징적 존재이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텔레비전은 1896년 처음 그 이름이 불렸고 1920년대에 발명되었지만, 실은 일찍이 19세기부터 신비적이며 선지적인 원격소통과 영상전송의 상상, 그리고 당대에 신비한 전자기 물리학의 발전 사이에서 ‘천천히’ 태어나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기술 표준이 자리잡는 데엔 많은 발명자들의 경쟁과 기여가 있었다. 과연 누가 이 대단한 사물을 만든 최초의 발명자일까? 흔히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은 자국 발명자를 중심으로 텔레비전 발명의 역사를 말하지만, 지은이는 사실 여러 발명자들이 저마다 이바지한 것들이 모여 텔레비전이 모양을 갖추며 등장할 수 있었다는 해석을 견지한다. 게다가 19세기의 상상도 이런 발명의 길에서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텔레비전은 주로 집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가정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은 가족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상징이 됐다. 시선과 가시각을 고려해 텔레비전은 놓여야 할 자리에 놓였고 다른 가구들의 배치도 달라졌다. 텔레비전의 위치는 귀한 손님이 앉을 자리도 정해주곤 했다. 일하면서 대충 보는 시청 문화는 일상화됐지만 가사노동에 얽매인 여성은 텔레비전에 몰입하고자 하는 소망과 집안일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재활용을 위해 쌓아놓은 옛 브라운관 텔레비전. 루아크 제공
텔레비전의 이야기는 집안에만 있지 않았다. 폭격지점을 원격 조종하거나 전투현장을 멀리서 지켜보는 데 쓰이는 텔레비전 기술은 중요한 전쟁무기로 개발됐으며, 영상과 메시지를 전하는 텔레비전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시행하는 데 쓸모 있는 도구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텔레비전은 마케팅과 소비 문화를 이끌었다.
한편에서 텔레비전은 ‘해로운 매체’로서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텔레비전은 우리 모든 삶을 공격해왔다. 이제는 우리가 텔레비전에 반격할 수 있다”며 텔레비전 회로에 개입하는 예술 활동을 펼친 백남준, 그리고 그밖에 많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텔레비전은 비평의 소재이자 영감의 재료였다. 소설과 영화에선 감시, 착각, 유혹, 공포를 상징하는 사물로 곧잘 그려져왔다.
그렇게 유별났던 시대는 저물고 있는가. 지은이는 마지막 장에서 ‘텔레비전의 종말’을 조명한다. 19세기에 상상으로 그려지고 20세기에 기술 경쟁, 세계대전 이후 확산과 번성의 시대를 지나며 ‘외계의 사물’은 점점 오래된 것이 되고 게다가 더 뛰어난 영상정보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텔레비전은 이제 그 유난스런 역사를 감쪽같이 감추고서 세련된 고화질 영상수신기로서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책은 이미 익숙한 다른 주변 사물도 실은 역사와 서사를 통해 우리 공동체나 개인의 역사와 문화에 깊게 스며 있을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