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송 지음/북인더갭·1만4000원 어떤 거대한 권력 집단이 점점 몰락의 길을 걷더라도, 내부에선 항상 개혁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채울 수 없는 지적 깨달음과 대안적인 삶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 청어람아카데미가 그런 곳이다. 아카데미를 만들고 이끌어온 양희송 대표기획자는 지난 2013년부터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서 5년간 상하반기로 나눠서 12주씩 수요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다니다가 실망하거나 또는 냉담해져서 더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전체 개신교인 중 10~20%인 100~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세속성자>는 이 모임에서 양 대표가 성-속 이분법, 예배와 전도, 공공선과 같은 뜨거운 주제를 끌어안고 분투한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다. 최근의 대안적인 기독교 담론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도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놓치지 않는 내공이 단단하다. 책에선 특히 고체-액체-기체교회 개념을 제안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고체교회’는 기존의 교회당을 기반으로 한 교회를, ‘액체교회’는 해변교회나 길 위의 교회처럼 성도들의 모임이라면 굳이 교회당이 없어도 된다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 그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기체교회’는 뭘까. 그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보면서 이 개념을 떠올렸다고 한다. 핀란드, 덴마크 같은 나라들에선 교회나 교인을 찾기는 어렵지만 국가 자체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해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삶의 질이 높다. 이런 기체교회와 같은 존재방식을 고체·액체교회와 공존하며 현실화하는 것이 기독교의 앞으로의 과제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필 주커먼이 <신 없는 삶>에서 했던 관찰과 통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이 나온 와중에 대형 보수 교단 중 한 곳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지난 11일 총회에서 양희송 대표가 이끄는 청어람을 비롯해 교회개혁실천연대, 좋은교사운동 등 그나마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기독교 단체들을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교인들이 이 단체들의 활동에 참여해도 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이렇게 샅샅이 찾아서 틀어막는 것이 사실 자기 숨구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올까?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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