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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거리의 인생’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한다면

등록 2018-09-06 19:59수정 2018-09-19 17:57

거리의 인생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위즈덤하우스·1만6000원

“‘나’라는 것은 반드시 단편적입니다. 우리는 나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특정한 누군가인 나를 통해 세계를 보고 경험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의 제목이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마, 2016)일 정도로, 기시 마사히코(51)는 ‘단편적인 것’에 주목해온 일본의 사회학자다. 이번에 국내 번역 출간된 <거리의 인생>(2014)은 ‘단편적인 것’에 대한 그의 집착, 특히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사회를 읽는 창으로 제시하는 그의 작업이 본격적인 저술로 꽃피운 작품이라 할 만하다.

지은이는 일본계 남미인 게이, 여성 성전환자, 섭식장애자, 싱글맘인 마사지 걸, 노숙자였던 남성 등 5명의 인터뷰를 책 속에 담았다. 무엇보다 그들과의 대화를 “최소한의 편집 없이” 그대로 담으려 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생활사’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자신이 한 인터뷰들을 연구 주제나 이론적 틀에 따라 분류하고 유형화·일반화해서 분석하지만, 지은이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편의 단편’을 가능한 만큼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장 ‘인생의 모습에 가까운 것’을 세상에 남기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온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출처 일본 기노쿠니야쇼텐 누리집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온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출처 일본 기노쿠니야쇼텐 누리집

때문에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하나의 의도된 체계와 구조를 갖춘 서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시간에 급한 걸음으로 이야기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예컨대 일본계 남미인 ‘루이스’와의 대화는, 고향인 남미에서의 생활과 일본으로 이주한 뒤 외국인으로서의 경험,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깨닫는 과정과 그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등을 이리저리 오간다. 2차대전 패전 당시 만주에서 열일곱의 나이로 귀국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노숙 생활을 경험한 뒤 복지 시설에서 살고 있는 ‘니시나리 아저씨’와의 대화는, 심지어 시간적 흐름마저 뒤죽박죽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말하는 단편들은 결국 그들의 삶 전체를 토양으로 삼아 나온 것이기에 각각은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그것은,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 자체와 비등한 의미와 무게와 폭을 갖고 있다.” 이들은 흔히 ‘소수자’로 분류되곤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르지 않게 평범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여성으로 성전환한 ‘뉴하프’인 ‘리카’는 “편견에 찬 말을 듣는 건 아무렇지 않아. 오히려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섭식 장애를 겪어온 ‘마유’는 자신의 변화를 “회복”이라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아이가 셋 있는 ‘마사지 걸’인 ‘요시노’는 “돈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으니, 역시 일을 해야 한다”며 고단한 성 노동의 현장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일본 현대사를 관통하는 70년 인생사를 들려준 ‘니시나리 아저씨’가 이 책의 초교가 나올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는 후기가 특히 쓸쓸하다. 그는 “죽을 때에도 누군가 지켜보는 일 없이, 혼자서 몰래, 편하게 꼴깍 숨이 넘어가면 좋을 텐데” 말했지만,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게 됐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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