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2018) <맥파이 살인사건>의 주인공 수전의 말을 빌리자면,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라는 문장은 여러 소설의 첫머리에 너무도 흔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수전의 말대로 책이 떨어져서 머리에 맞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책에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진정,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액자소설 구성인 <맥파이 살인사건>은 추리소설 독자의 이상 같은 소설이기도 하다. 21세기 런던, 작은 출판사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팀 팀장으로 일하는 수전은 대표 작가 앨런 콘웨이의 신작 ‘맥파이 살인사건’의 원고를 받는다. 콘웨이가 만들어낸 탐정 아티쿠스 퓐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이 소설은 1955년의 영국 시골 마을 색스비온에이번을 배경으로 한다. 파이 홀이라는 저택의 가정부 블랙키스턴 부인이 죽은 후 마을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 곧이어 일어난 흉악한 살인. 동기가 있는 용의자는 너무도 많고, 어딘가 모르게 에르큘 포와로를 닮은 탐정 아티쿠스 퓐트는 조수 제임스 프레이저와 함께 수사에 착수한다. 마을의 가십과 가족 간의 갈등, 평범하지만 악의를 숨긴 사람들, 고전 추리소설의 흥미로운 요소가 죄다 배합된 이 소설에는 딱 하나의 단점이 있다. 해결 편이 되는 마지막 장이 사라진 것이다. 추리소설 독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답답한 상황이다. 수전은 소설의 결말을 알아내려 하지만, 앨런 콘웨이는 직접 답을 해줄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독자에게 두 가지 임무를 맡긴다. 하나는 옛날 동요 “(까치가) 한 마리면 슬픈 일이 생기고”에 맞춰서 일어나는 소설 속 소설의 사건 범인을 맞히는 일. 또 다른 하나는 소설의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맞히는 일. 허구와 현실은 서로 뒤얽혀서 그 실뭉치를 매끄럽게 풀어나갈 때 진실의 문에 다다를 수 있다. <맥파이 살인 사건>은 추리소설 독자라면 싫어할 수가 없는 소설이다. 앤서니 호로비츠는 국내에는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셜록 홈스 속편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즉, 그는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고, 기술을 쓰는 방식이 세련되었으며, 현대적 감각도 갖추었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읽었던 황금기 영미 추리소설의 모든 요소가 언급되고, 동시에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현대식 스릴러의 요소도 은은하게 깔려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닮은 앨런 콘웨이의 소설은 마지막 장이 끝까지 발견되지 않기에 독자들에게는 도전이 되고, 원고를 찾아 떠나는 수전의 모험은 긴장감을 준다. 할리퀸 로맨스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실망하지 않을 설정도 있다. 이 책을 읽고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 인생을 바꾸어놓은 어떤 한 권의 특정한 책을 떠올릴 수는 없다고 해도, <맥파이 살인사건>에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수많은 책이 들어 있었다. 지금처럼 내가 추리소설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추리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그 소설들 덕분이었다. 한 권의 책은 머리에 맞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각각의 책들은 모두 모여 하나의 생을 바꾸고 만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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