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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름다운 지인들 모여 ‘마지막 소원’ 문향놀이 즐겨요”

등록 2018-09-02 23:26수정 2018-09-03 19:21

[짬] 첫 사진에세이집 낸 치과의사 송학선 원장

“죽기 전에 꿈 한 번 꿉니다. …한지에 사군자와 동양화처럼 인화된 ‘콩밝’의 사진 작품이 전시되는 꿈 말입니다. …두루 나를 아는 모든 아름다운 이들이 모여 대동 세상 한 판 난장을 펴는 꿈 말입니다.…그냥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목이 메는 걸 어쩝니까.”

‘담도세포암’이라는 희귀암과 투병을 해온 그는 지난 5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페친’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올렸다. 가을을 맞으며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오는 5~17일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에서 <콩밝 송학선의 한시산책-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 출판기념 사진전을 여는 치과의사 송학선(66·사진)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8일 오후 4시부터는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임옥상·최열·양길승씨 등 지인들이 화답한 덕분이다.

“제가 거문고를 배운 현학 고보석 선생께서 화편가락으로 판을 열어 주시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치신문>을 대표해 전민용 선생께서 축사를, 즐겁게 세상바꾸기 아르고나우따이를 대표해 한바람 임옥상 화백께서 또 축하 인사를 해주시면, 문화학교 정가반 학동들이 ‘콩밝 시조’로 시창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책 소개를 잠깐하고… 아마도 장사익 선생과 비타 김광석 선생의 축하 무대가 이어질 겁니다. 사회는 서울연구소 소장을 지내시고 국민대 교수이신 눌곡 이창현 교수가 수고해 주실거구요, 이어 인사동 식당 하나를 전세내어 뒷풀이가 이어질 겁니다. 목청 잘 다듬으시고, 장기인 악기 하나씩 가져 오셔서 난장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전시회의 찬조 출연자들도 예사롭지 않다. 거문고 명인 고보석, 전각 장인 정병례, 서예가 전명옥, 민중미술가 임옥상, 도예가 이영호, 만화가 반족이 최정현, 초상화가 김희경 등등. ?그의 소원대로 당대 예술인들이 총출동해 ‘문향놀이’와 ‘난장’을 펼친다.

치과의사인 그가 어떻게 이처럼 특별한 소원풀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환경운동 지역운동 하는 의사’ 유명
1995년 ‘과천시장’ 낙선 뒤 사진 시작
한시·거문고·전각 등 예술로도 ‘일가’

올초 ‘시한부 선고’ 받고 페친들에 요청
“콩밝 송학선과 난장 한판이 소원”
‘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
5일 사진전 개막…8일 출판기념회도

송학선 원장이 2일 수묵담채화를 찍은 듯한 자신의 사진작품을 배경으로 갓 나온 첫번째 사진에세이집 <봄비에 붓을 적셔 복사꽃을 그리다>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애 기자
송학선 원장이 2일 수묵담채화를 찍은 듯한 자신의 사진작품을 배경으로 갓 나온 첫번째 사진에세이집 <봄비에 붓을 적셔 복사꽃을 그리다>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애 기자
‘1952년 대구 땅콩장사 집에서 나고 자람, 서울대 치대 8년 만에 졸업, 84년 송학선치과의원 개원, 6월항쟁 직후 청년치과의사회 창립 초대회장,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반핵특위 위원장, 반핵평화운동연합 창립준비위원, 환경재단 136포럼 운영위원, 과천NGO연대 대표, 과천생명민회 공동대표, 충치예방연구회 회장, 콩세알튼튼치과 근무.’

스스로 정리해놓은 약력대로, 그는 지금까지 ‘환경운동 하는 치과의사’로 널리 알려졌다. 대학시절부터 반유신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그는 88년 <한겨레> 창간주주로도 참여했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외도 이력’이 하나 있다. ‘1995년 경기도 과천시장 출마’.

“환경운동연합과 과천시민모임에서 청계산 눈썰매장 건설 반대운동을 하다 등떠밀려 나갔어요. 정치 문외한에 무소속으로 ‘2등’이면 대단하다고들 했지만 어쨌거나 ‘낙선’이었죠. 허전함을 달래려고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부부 동반 여행을 나섰다가 차츰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게 됐어요.”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그의 사진 솜씨는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4차례 사진전을 열만큼 수준급이 됐다. 2004년 녹색병원 상설 전시, 2005년 <몽골, 아르고나우따이전>과 2009년 건치 20돌 기념 사진전 <사진으로 만난 세상>을 거쳐 2010년 <콩밝 송학선의 사진으로 쓴 여행 보고서, 소외 그리고>로 첫 개인전도 열었다. 과천의 이웃으로 만나 ‘술친구’이자 ‘아르고나우따이’(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동무였던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에 실린 프로필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2010년 첫번째 사진 개인전 <콩밝 송학선의 사진으로 쓴 여행 보고서, 소외 그리고> 포스터 앞에 선 송학선 원장의 부인 문혜영씨. 공해추방운동연합과 한살림 창립회원으로 송 원장에 앞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갈무리
2010년 첫번째 사진 개인전 <콩밝 송학선의 사진으로 쓴 여행 보고서, 소외 그리고> 포스터 앞에 선 송학선 원장의 부인 문혜영씨. 공해추방운동연합과 한살림 창립회원으로 송 원장에 앞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갈무리
“대학시절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 방황하던 때가 있었고, 또 가슴 한구석엔 젊음과 함께 보낸 답답하던 시절의 흔적이 얼룩얼룩 남았습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술과 낭만과 함께 게으름으로 보낸 시절이며, 그 멋진 친구들의 민주화 운동이며 보건의료운동, 건치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지역시민운동 주변을 맴돌며 치과의사로 살아온 중늙은이의 인생사도 얼룩져 있습니다.”

사진으로 시작된 그의 외도는 환갑을 넘으며 한시를 비롯 서예, 거문고, 전각, 염주만들기, 부채 그리기까지 문향의 세계로 거침없이 퍼져갔다. 일찍이 ‘피시통신 1세대’ 누리꾼인 그에게 페이스북은 경계없는 놀이마당이 됐다. <한시 산책>, <세알콩깍지 아포리즘>, <시 산책>, <예쁜우리말 산책>, <국악 산책>, <월드뮤직 산책>, <시조 산책>, <옛가요 산책> 등을 운영해왔다. 탁본을 비롯 불교 문화의 대가로 꼽히는 흥선 스님(전 직지사 주지)이 그의 한시 스승이다.

“잠자기 전 베갯머리에서 한시 한 수 읽기를 몇해째 하고 있습니다. 잠도 잘 오고 꿈자리도 편하더군요. ‘춘수춘홍수심천’(봄 시름과 봄 흥취 어느 것이 더 깊을까)라는 시구를 만나고, ‘필함춘우사도화’(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는 구절에 울컥하더니, ‘행화영락자규제’(살구꽃 진다, 접동이 운다) 구절에서는 그만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번 책은 “제멋대로 시구를 고르고, 삶의 여행에서 만난 경물을 사진으로 담고, 또 제 말을 섞어 2015년 가을부터 <건치신문>에 연재해온” 내용을 엮은 것이다. 책에는 64수의 한시를 골라 뜻과 역사적 사실까지 설명하고 그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였다. 사진전에는 600여장 가운데 고른 40점을 선보인다.

‘콩밝’은 송학선 원장이 직접 지은 호로, 한자 ‘空朴’에 뜻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자 출간기념 사진전의 제목인 <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는 청대 시인 석도의 ‘제도화책’의 한 구절이다.
‘콩밝’은 송학선 원장이 직접 지은 호로, 한자 ‘空朴’에 뜻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자 출간기념 사진전의 제목인 <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는 청대 시인 석도의 ‘제도화책’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그가 페북을 통해 띄운 ‘뒷풀이 난장 초대장’에는 삶의 궤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0돌을 맞은 건치 회원들과 아르고나우따이들과 어른의 학교(직지사 인문학 프로그램) 학동들과 6월 민주포럼 인사들과 우도평(보건의료단체 대표들 모임 우리도평화)들과 검화조(과천 동네 친구들) 아우들과 충치예방연구회 회원들과 콩세알 식구들과 현학조(거문고 동호회) 학동들과 졸묵회(예술의전당 서예동아리) 회원들과 묵재(담헌 선생 제자들) 회원들과 환경련 동지들과 써니 선배들과 벽태시 동무들과 ‘붕알’ 친구들과 페친들까지’.

“돌이켜보니, 한학을 하신 아버님과 8남매 막내로서 형과 누이들에게 받은 영향이 큰 듯해요. 어릴 때 대구 교동 양키시장에 줄줄이 걸려 있던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끝내 배우지 못한 아쉬움에, 예과 1학년 때 덴탈오케스트라를 꾸리기도 했으니까요. 대학시절 대구에서 긍농 임기순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운 적도 있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 문혜영씨가 마무리하듯 한마디 건넸다. “대학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1930~60년대 옛노래를 즐겨 부르더라구요. 형과 누나들한테 배운 거죠. 정작 70년대 이후 노래는 제대로 아는 게 없을 정도예요. 이번에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새삼 깨달았는데요, 이름부터가 천생 ‘한량’ 아닌가요?”

송 원장은 출판기념회 난장에서 직접 지은 시조를 노래로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사진과 한시 작품은 페이스북 ‘아희야, 벗 오셨다. 탁주부터 걸러라’에서 미리 구경할 수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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