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가 아니다-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횡단하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열린책들·1만8000원
철학은 다시, 수세에 몰렸다. 철학이 종교의 시녀 노릇을 하던 중세를 벗어나, 모든 학문의 뿌리를 자처한 근대를 맞았지만 영광의 시기는 짧았다. 현대에 들어 질문을 일으키는 주도권은 과학으로 넘어갔고, 철학의 발언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진화론은 인간 행동의 동기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뇌과학은 인간 정신의 메커니즘을 모두 밝혀낼 것이라 공언한다. 과학은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테제를 뒤집는다. 철학은 그동안 세상을 해석하기만 해왔다. 이제 세상을 변혁하는 것은 과학이다.
새로 투입된 독일의 신예 선수가 판세를 뒤집어 줄 수 있을까.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28살에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 석좌 교수에 임용됐다. 23살에 독일 예나대학교 교수가 된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 이후 최연소 철학교수’란 화려하면서 좀 긴 타이틀이 따라붙는 철학자다.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 10개 언어에 능통하다니 천재임은 확실한 듯하다.
가브리엘이 낸 신작 <나는 뇌가 아니다>(2015)는 인식, 자아, 자유 등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라고 말하는 현대의 과학과 과학철학을 ‘신경과학’이라 명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브리엘은 특히 칸트와 헤겔 등 독일 관념론 철학을 중요한 참고점으로 삼는데, 마침 독일에서 칸트와 헤겔을 공부한 전대호 철학 전문 번역가가 번역을 맡아 번역에 자신감이 넘친다.
신경과학이란 무엇인가? 그는 신경과학의 근본 테제는 ‘나는 뇌다’라고 요약한다. 신경과학자들은 나, 의식, 자아, 의지, 자유, 정신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뇌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에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뇌의 10년’을 주창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뇌 활동 지도’ 프로젝트를 지원한 것처럼, 신경중심주의는 이런 생각이 현실화한 사례들이다. 이런 신경과학은 인간의 뇌가 디지털화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완전히 치환되면 인간 이상의 존재로 영생하며 더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된다고 믿는 ‘트랜스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소피아에게 묻다' 컨퍼런스에서 ‘로봇의 기본 권리'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브리엘은 신경과학을 ‘신경강박’과 ‘다윈염(炎)’이란 용어로 해부한다. ‘다윈염’은 모든 현상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꼬집는 말이다. “신경강박이란 인간의 중추신경계―특히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계속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다윈염은 우리의 까마득한 생물학적 과거를 끌어들여 신경강박을 보완한다. 다윈염에 걸린 사람들은, 지구 상의 다양한 종들 사이에서 벌어진 생존 투쟁에서의 적응적 장점들을 재구성하면 현 인류의 전형적인 행태를 더 잘 혹은 비로소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중심주의는 신경강박과 다윈염의 조합이다. 즉, 뇌의 진화 역사를 고려하면서 뇌를 연구해야만 정신적 생물로서의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신경중심주의다.”
가브리엘은 이런 신경중심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뇌가 인간의 의식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필요조건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야 하고 내가 자전거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들도 따로 갖춰야 한다. 뇌를 이해하면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리라는 믿음은 우리의 다리를 이해하면 자전거 타기를 완전히 이해하리라는 믿음과 유사하다.”
그는 신경과학이 냉소하는, 인간 존엄과 자유의 핵심인 자유의지를 옹호하기 위한 논변을 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필요조건에는 자연법칙과 같은 ‘엄격한 원인’들이 있지만, 동시에 다양하고도 구속적이지 않은 ‘이유’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 가서 다양한 종류의 스파게티 중에 토마토 스파게티를 고른다고 하자. 거기엔 ‘나의 신경 화학이 나를 토마토소스로 이끈다’ ‘내 안의 미생물들이 토마토소스를 선호한다’ 같은 엄격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토마토 스파게티의 가격이 적당하다’ ‘그럴 만한 돈이 있다’ 등 자연법칙이 아닌 복잡한 경제 시스템에서 결정되는 ‘이유’들도 있다. 즉, 하나의 결정에는 무수한 조건이 존재하고, 이 조건들은 하나의 이론으로 통찰할 수 없다. 형이상학만이 아닌 경제학, 윤리학 등 다양한 세계관에서 연유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 중에는 강제적이지 않은 ‘이유’들이 있고, 가능성의 공간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로 독일에서 16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2015년엔 <나는 뇌가 아니다>를 내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글쓰기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열린책들 제공
그가 신경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 선 기반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하는 의무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왜 인간은 그저 무자비한 이기적 포식 동물에―그런 포식 동물로서 행동할 수 있는데도!―불과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하나는, 인간은 다른 인간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통찰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인간이 타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더 정당화하려면, 타인들도 의식 있는 삶을 영위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를 부인하는 신경과학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논리와 공모하는 것이기에 더 우려스럽다. 구글과 같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업들은 인간의 정신이 완전히 파악 가능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예측 가능하길 원한다. 즉, 현대의 신이 되길 원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은, 인간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하지만 도덕적·법적 질서를 향상하고 사회정치적 진보를 일궈나가는 것이다. “실재를 저주할 원리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회적, 정치적 진보를 추진할 이유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현재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간 존엄에 걸맞은 삶을 명백히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 아래에서 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인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문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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