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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 그 책, 어떻게 탄생했나

등록 2018-08-09 19:30수정 2018-08-09 19:35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
인간 인식의 사각지대 포착해
노벨상 받은 ‘행동경제학 창시자’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삶 되살려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세상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두 천재 심리학자의 행동경제학 탄생기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1만8500원

감독과 주연배우만으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있다. 책 중에도 그런 책이 있는데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이 그렇다. 논픽션 작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람 중 한 명일 마이클 루이스(다른 한 사람은 맬콤 글래드웰)가 쓴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이야기라니. 루이스는 야구에 경제학을 도입해서 성공신화를 쓴 메이저리그 야구단의 실화를 다룬 <머니볼>과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파헤친 <빅 숏>이란 논픽션 걸작을 써서 이 분야의 모범 작가로 통한다. 카너먼은 트버스키와 함께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고, 자신의 연구를 소개한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을 쓴 저자다. 루이스는 신작에서 예의 꼼꼼한 취재를 거쳐 속도감 있는 필치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두 천재의 연구들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되살려낸다.

카너먼은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프랑스 파리까지 쳐들어온 독일 나치군을 피해 도망다니다 아버지까지 잃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신분이 탄로나지 않게 남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고, 항상 자기가 틀린 점이 있다고 의심하는 그의 성향은 심리학자에 매우 적합했다. 반대로 트버스키는 이스라엘 토박이이자 용감한 공수부대 출신으로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극과 극의 성향인 두 사람은 1969년 봄 자신들이 교수로 있던 히브리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만난 즉시 서로를 알아본다. 그 이후로 깨어 있는 시간 외에는 항상 함께 있으면서, 수많은 주제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나중에 두 사람은 어떤 아이디어가 애초에 누구한테서 나왔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첫번째 공동 논문을 낼 때 동전 던지기로 대표 저자를 정했고, 이후에는 번갈아 가며 대표 저자를 맡았다.

두 사람은 간단한 문제를 고안해 사람들이 통계적 판단에서 오류를 저지르는 심리적 기제를 포착했다. 심지어 어떤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통계학과 교수들도 여지없이 오류를 범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표성 판단’이다. 사람들이 판단을 할 때 판단 대상을 머릿속에 있는 어떤 모델과 비교하는 성향을 말한다. 어떤 농구선수가 우리가 잘 아는 프로 농구선수와 닮았을 때, 합리적인 근거 없이 그 선수가 프로선수가 될 확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트버스키는 역사학자들이 곧잘 빠지는 함정을 지적해 이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무작위로 뽑은 자료에서도 사람들은 일정한 유형이나 경향을 찾아내는 데 선수에요. (…) 반면에,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거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일단 특정한 가설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면, 그 가설이 실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가 아주 힘들어지죠.” 이후에 ‘사후 판단 편향’이라고 불리는 이 편향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음모론에 현혹되는지 이유를 설명해준다.

1970년대 말 아모스 트버스키(왼쪽)와 대니얼 카너먼(오른쪽)이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학교에 있는 그들의 첫 집의 뒤뜰에서 장난스레 머리에 꽃을 꽂고 잔을 들어 축하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1970년대 말 아모스 트버스키(왼쪽)와 대니얼 카너먼(오른쪽)이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학교에 있는 그들의 첫 집의 뒤뜰에서 장난스레 머리에 꽃을 꽂고 잔을 들어 축하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이 책이 특히 짜릿한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지점은 두 사람의 연구가 경제학, 경영학, 의학 등 다른 영역에 충격을 줘 기존의 관념을 뒤엎어버릴 때다. 카너먼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전망(프로스펙트) 이론’은, 사람들은 누구나 기댓값이 높은 선택지를 취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기대효용 이론’을 뒤흔들어놨다. <넛지>의 저자인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었을 때 두 사람의 이론이 담긴 논문을 읽고 충격을 받고 훗날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세일러는 두 사람의 이론이 “심리학을 가득 싣고 경제학의 성스러운 내부로 들어가 폭발하는 트럭”(루이스의 표현)임을 알아봤다. 합리적인 주체들이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고 설정한 경제학의 인간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연구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두 사람의) 논문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마치 금이 담긴 비밀 항아리를 발견한 기분이었어요. 왜 그렇게 흥분이 되는지, 한동안은 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알았죠. 거기엔 중요한 개념이 있었어요. 체계적 편향.”

또한 <넛지>의 공저자인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백악관에서 일하며 ‘손실회피 심리’와 ‘프레임 효과’ 등 두 사람의 이론을 적용해서 연금 가입자 30% 증가, 무상 급식 수혜 학생 40% 증가 등 중요한 성과들을 일궈내, 그가 그만둘 즈음엔 전세계 정부에서 심리학적 통찰의 중요성이 대두될 정도였다. 카너먼은 노벨상을 받은 학자일 뿐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들의 학자’임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트버스키에게만 교수직을 제안했다. 겸손을 몰랐던 트버스키는 카너먼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했고, 점점 다툼이 잦아져 결국 두 사람은 ‘이혼 선언’을 하는 데 이른다. 그로부터 3일 뒤, 트버스키는 카너먼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이 눈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우린 친구야.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이라며 화해를 청한다. 카너먼은 ‘전망 이론’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사실상 1996년 사망한 트버스키와 공동 수상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기존에 일해왔던 방식이나 내가 속한 분야에서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원칙들이 갑자기 의심스러워지며 수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할지 모른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의심하고 점검해보도록 추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니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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