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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만물을 결정하는 법칙, ‘크기’

등록 2018-07-26 20:00수정 2018-07-26 20:23

복잡계 과학 대가 제프리 웨스트
동식물·도시·기업 관통하는
보편적 물리·수학적 원리 탐구
인구의 통제불가능한 증가 경고
스케일-생물 도시 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김영사·3만원

‘복잡계 과학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웨스트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원래 뼛속까지 이론물리학자였다. 생물학자들과 만나고는 “많은 물리학자가 그렇듯이, 다윈을 뉴턴 및 아인슈타인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끔찍해 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그가 생명체와 도시, 기업과 같은 복잡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개인적인 동기에서였다. 그는 50대에 들어서자, 노화와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남성들의 수명이 짧은 집안에서 태어나 앞으로 5~10년 안에 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립자, 끈이론, 암흑물질을 연구하던 물리학자의 엄밀성으로 복잡계를 관통하는 법칙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크기’(스케일)가 이 세상의 많은 현상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스케일>은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한 달 뒤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방송 예능 <알쓸신잡>(tvN)에서 소개해 국내 번역 출간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스케일>의 저자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와 전지구적인 도시화야말로 지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들의 원천이라면서 산업혁명 이후 시기를 ‘도시세’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사진 김영사 제공
<스케일>의 저자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와 전지구적인 도시화야말로 지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들의 원천이라면서 산업혁명 이후 시기를 ‘도시세’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사진 김영사 제공

웨스트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르고 고도로 복잡한 동물, 식물, 인간의 사회적 행동, 도시, 기업을 관통하는 단순한 수학적 규칙성과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특히 생명체의 세계에선 ‘4분의 1 지수 스케일링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물의 체중과 대사율은 지수가 4분의 3(0.75)에 가까운 거듭제곱 법칙에 따라 증감한다. 어떤 동물의 몸집이 다른 동물의 2배라면, 필요로 하는 에너지양은 2배가 아니라 75%만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코끼리는 쥐보다 1만배 무겁지만, 세포 수는 1만배가 아닌 1천배밖에 되지 않는다. 코끼리는 쥐보다 에너지 효율이 10배가 좋은,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수명의 문제에서도 법칙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인류의 기대수명은 70살, 최대 연령은 125살 미만이다. 지금까지 확실한 근거가 있는 최고령자는 1997년에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으로 122년 164일을 살았다. 웨스트는 인간의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나 250년까지 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죽을 확률이 지수적(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작 1~2년을 사는 생쥐부터 100년 이상을 사는 고래까지 포유동물들은 모두 평생 심장박동수가 15억번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인간도 이를 완전히 넘어서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심장병과 심혈관계 질환이 정복되더라도 기대수명은 6.73년, 암이 정복되더라도 기대수명은 3년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제프리 웨스트는 <스케일>에서 도시가 2배씩 커질 때마다 도시 전체의 부, 1인당 임금, 특허, 범죄, 오염, 질병 등이 모두 약 15%씩 증가한다는 법칙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제2도시 두바이의 마천루 풍경. 김영사 제공
제프리 웨스트는 <스케일>에서 도시가 2배씩 커질 때마다 도시 전체의 부, 1인당 임금, 특허, 범죄, 오염, 질병 등이 모두 약 15%씩 증가한다는 법칙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제2도시 두바이의 마천루 풍경. 김영사 제공

그는 현대사회의 핵심 기관인 기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는데, 기업도 생명체를 지배하는 ‘4분의 1 지수 스케일링 법칙’에 따라 성장하고 죽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초기에는 급속히 성장하다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로를 밟는다. 1950년 이래로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2만8853개 기업을 조사해보면 30년이 지나고도 살아 있는 기업은 5%도 안 되며, 50년 안에 사망(합병·인수 포함)하는 기업 수는 거의 100%에 가깝다.

반면, 도시와 인구처럼 세계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규칙은 다르다. 웨스트는 사회경제 영역을 지배하는 규칙은 ‘15% 스케일링 법칙’이라고 말한다. 세계 어디에 있는 도시든 그 크기가 2배 증가할 때마다 주유소, 수도관, 도로, 전선과 같은 물질적 기반시설은 약 85%만 증가했다는 놀라운 규칙성을 보였다는 것. 그와 동시에, 도시가 2배씩 커질 때마다 도시 전체의 부, 1인당 임금, 특허 수 등은 약 15%씩 증가한다. 범죄, 오염, 질병 같은 부정적 요소도 똑같은 규모로 늘어난다.

문제는 지수적 성장을 하는 도시와 인구, 경제도 특정한 순간(유한 성장 특이점)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붕괴되는 파국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는 전 세계 인구가 10억명에 도달하는 데 200만년이 걸렸지만, 그 두 배가 되는 데는 120년, 다시 그 두 배인 40억명이 되는 데는 60년(1974년 기준)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최근엔 세계 인구가 그의 두 배인 73억명을 넘고, 22세기가 되기 전에 120억명에 이를 게 확실시된다. 인구가 이처럼 급속하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 화석 연료 사용이 폭증해 지구의 온도가 급속하게 상승하는 등 생태계 파괴와 석유·인·티타늄 같은 핵심자원의 고갈로 인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제프리 웨스트는 고질라가 실제로도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키 100미터에, 몸무게 2만톤인 고질라가 걸으려면 허벅지는 지름이 30미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고질라는 오로지 다리만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동물에게 가능한 최대 크기는 약 200톤으로 이는 대왕고래 몸집과 거의 같다”고 말한다. 사진은 영화 <고질라>에 나온 대괴수 고질라. 김영사 제공
제프리 웨스트는 고질라가 실제로도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키 100미터에, 몸무게 2만톤인 고질라가 걸으려면 허벅지는 지름이 30미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고질라는 오로지 다리만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동물에게 가능한 최대 크기는 약 200톤으로 이는 대왕고래 몸집과 거의 같다”고 말한다. 사진은 영화 <고질라>에 나온 대괴수 고질라. 김영사 제공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선 인류가 혁신에 성공해야 하지만, 성장과 몰락이 지수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때문에 혁신과 혁신 사이에 허용된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늘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한 대의 가속되는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서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시기가 되면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되는 다른 트레드밀로 뛰어넘어야 하고, 그 뒤에 다시 더욱 빨리 움직이는 또 다른 트레드밀로 더 짧은 시간에 옮겨 가야 한다.”

그는 책 말미에서 최근의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정보통신혁명이란 혁신이 인류로 하여금 임박한 파국을 맞지 않고 피해갈 수 있게 해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이런 기술보다 인간세계에 더 심대한 변화를 끼쳤던 철도와 전보 등 이전 시기의 기술 발달은 도시와 인구를 줄인 것이 아니라 더 팽창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며 말이다.

최근 ‘특이점 이론’, ‘트랜스휴머니즘’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두세배로 늘어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더 높은 수준의 문명을 달성하리라는 미래학자들의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물리와 수학을 다루는 엄밀한 과학자로서 이런 섣부른 낙관들에 근거를 따져 묻고 물리 세계의 무자비함을 상기시켜주는 지은이의 목소리가 더 귀하게 다가온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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