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더난출판·1만4000원
현존하는 ‘최고의 독서가’, 3만5000여 권을 소장한 장서가이기도 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겔이 서재와의 이별담을 펴냈다. 올해 출간된 최근작이다. 책, 지식, 읽기, 서가(도서관)에 관한 해박한 글쓰기의 아이콘인 그가 서재를 떠나보내다니?
이 서재는 프랑스에 있었던 작가의 마지막 개인 도서관을 말한다. 2011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은 <밤의 도서관>(2007)의 장소, 책과 영혼이 얼마나 신비롭게 결속하는지 보여주던 바로 그곳. 프랑스 정부와의 송사 때문에 미국 뉴욕 맨해튼의 침실 한 칸짜리 집으로 옮기게 되면서 책을 창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서재와 억지 이별을 한 것이다. 책이란 읽은 기억으로 존재하며 물리적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 스승 보르헤스와 달리, 지은이는 “믿으려면 먼저 만져봐야 한다”는 성서 속 도마 같은 부류다. 책의 질감을 잃은 그는 깊이 상심한다. 왜 아니겠나. 양서가 가득 찬 방에 있으면, 근사한 글을 쓴 자유롭고 용기 있는 인간들이 나를 에워싼 듯한 기분이 된다. 그런 은밀한 안심이 얼마나 많은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지.
현존하는 ‘최고의 독서가’라 불리는 알베르토 망겔(70)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가 받은 위로도 다시 책으로부터 왔다. 복수를 다짐하는 리어왕, 정체성을 뺏긴 돈키호테, 숙모를 용서하는 제인 에어 등 문학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상처를 정형한다. 지은이는 ‘쉽게 쓰기’로도 정평 난 작가다. 비범하게 박식한 그의 글엔 수많은 작가와 작품, 인용이 등장하지만 식겁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친절하고, 자주 독자를 웃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는 거의 없지만, 형편없는 책들은 또 안 버리는 사람이니까. 엉망인 책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야 할 때 필요해서!
서재와 헤어진 뒤 ‘반전’의 3년이 두드러진다. 2015년부터 ‘국가 서재’ 국립도서관장 직을 수행하며 기록한 아이디어. 그가 제시하는 국립도서관의 정의는 “모든 종류의 발현된 정의를 소장한 곳”이다. “우리가 정의를 인간 사회가 열망해야 할 공유된 가치로 여긴다면 특정한 사회의 모든 징후를 소장하는 것”이 국립도서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은 원주민 공동체,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의 역사, 페미니즘 자료를 적극 수집하고 있다. “도서관이 독자와 예비 독자의 아늑한 보금자리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국립도서관은 모든 분야의 시민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제국은 망해도 문학은 망하지 않았고, 쓰지 않는 사회는 존립해도 읽지 않는 사회는 성하게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읽는 힘이 곧 행동하는 힘이라 주장한다. 최상의 지식과 아름다움의 하늘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리는 곳은 공공도서관이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라면, 이 책을 통해 우리 국립도서관의 변신과 도약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도서관과 함께 세워진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섬세한 애서가는 읽기의 불가해한 매력까지 안다. 독서는 사랑에 빠짐과 같아서 다른 즐거움처럼 강요될 수 없다며, 독서인구 증가 같은 행정적 포부는 접는다. 대신 꿈꾼다.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폐허가 된 고대 도서관의 입구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영혼의 진료실’. 어쩌면 이게 도서관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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