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와 독일 사회의 변화
전종덕·김정로 지음/백산서당·3만5000원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집전종덕·김정로 엮음/백산서당·2만원
독일 녹색당·좌파당 강령집전종덕·김정로 엮음/백산서당·2만원
독일 사회민주당(SPD·이하 사민당)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삼고 스스로 ‘좌파 정당’이라고 칭하는 등 이른바 ‘진보정치’의 산 증인과 같은 정당으로 손꼽힌다. 경기문화재단 사무처장·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장 등을 역임한 전종덕과 사회학자인 김정로(성균관대 초빙교수)가 최근 펴낸 <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는 150년을 훌쩍 넘는 사민당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사민당의 행보에 주목해왔고 <독일 사회민주당 150년의 역사>(한울아카데미, 2017) 등 그 역사를 다룬 책도 출간된 바 있다. 이번 책은 국내 필자가 한 권의 두터운 단행본으로 사민당의 전체 역사를 담으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은이는 사민당의 역대 강령을 번역해 묶은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집>과, 사민당과 함께 독일 진보정치의 전체 지분을 나누고 있는 녹색당과 좌파당의 강령을 담은 <독일 녹색당·좌파당 강령집>도 함께 펴냈다.
2002년 ‘하르츠 개혁’을 주도했던 슈뢰더 총리(왼쪽)와 폭스바겐의 노동이사 페터 하르츠의 모습. 사진 안드레아 비에네르트, 출처 GHDI
사민당의 기원은 1863년 라살의 주도로 만들어진 ‘독일노동자협회’와 1869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 주도로 만들어진 ‘사회민주노동자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단체는 1875년 고타에서 합동 당 대회를 열어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통합하였으며, 이후 1890년에 ‘사회민주당’으로 그 명칭을 바꿨다. ‘고타 강령’에서부터 사민당은 국가 내 합법적인 정당으로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밝혔는데, 그 뒤로도 치열한 노선투쟁을 통해 혁명주의 노선을 청산하고 의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추구하는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한 당내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갈무리된 강령 속에 담겼다.
사민당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강령 가운데 하나는, “계급에 바탕을 둔 노동자의 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의 전환,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 냉전 체제의 인정” 등을 천명한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이다. 이처럼 이념보다 현실을 강화한 노선을 바탕으로 삼은 사민당은 1969년 자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펼쳐진 ‘사회민주주의 15년’은, 경제 발전과 복지제도 강화와 같은 사회정책의 제도화 등을 이뤄내 오늘날 ‘사회국가’ 독일을 만드는 기틀이 됐다. 분단 현실의 인정에서 출발한 ‘동방정책’은 화해와 공존의 환경을 조성했다.
2005년 독일에서 복지 축소와 노동 개혁을 핵심으로 삼은 ‘하르츠 개혁’에 반발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지은이들은 오늘날 눈에 띄게 쪼그라든 사민당의 위상이, 이미 이때부터 시작된 것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애초 사민당은 현실적 집권에 몰두하는 권력정치 정당이라기보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계급정당으로서 정치운동 조직에 가까웠다. 그런데 집권당으로서 15년 동안 펼친 개혁이 한편으론 사민당 고유의 ‘운동성’을 실종시키고 당을 기득권 정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민당 집권 기간 동안 되레 평화운동과 환경운동 세력들이 사민당 바깥으로 뛰쳐나가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운동성을 포기하지 않은 진보정치 세력들은 녹색당, 좌파당으로 각자의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게 됐다. 또 지은이는 사민당이 통일에 대해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옛 동독 지역에서 어떤 지지세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도 쇠퇴의 원인으로 꼽는다.
1959년 독일 사민당이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된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과시킨 당 대회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민당은 90년대 말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앞세워 다시 집권하긴 했으나, 대대적인 복지 축소와 노동 개혁을 펼친 그의 ‘신(新)중도’ 노선은 당세를 더욱 본격적으로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1972년 총선에서 45.8%의 득표율을 보였던 사민당은, 지난해 총선에선 고작 20.5%의 득표율에 그쳤다. 1975년 110만명 이상이었던 당원 수는 현재 43만명 수준이다.
지은이 전종덕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념과 현실을 날카롭게 갈무리했던 과거 강령들과 달리, 2007년 ‘함부르크 강령’ 등에서 보듯 최근 사민당은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당의 득표율을 합해보면 40% 안팎으로, 독일의 전통적인 진보정치 지지층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사민당의 앞날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짚었다. 그는 “당내의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진보정치’의 이념과 현실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의 사례로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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