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드레이크 외 31명 지음, 오현아 옮김/마음산책·1만6000원 ‘발자취’(Footsteps)는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1981년 한시적으로 시작했다가 곧 정기 연재로 안착한 유명 연재물이다. 모니카 드레이크 <뉴욕타임스> 여행 섹션 편집장은 ‘발자취’를 이끈 본질적 질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행자인 우리는 이 기념물들을 만지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창조해냈는지 기도 대신 명상하는 신도일 뿐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길게 뻗은 언덕과 새벽안개가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이곳은 영감과는 거리가 먼, 그저 우연한 공간이었을까?” <작가님, 어디 살아요?>는 ‘발자취’에 실렸던 글 중에서 38편을 추려서 엮은 책으로, 한국어판 제목은 출판사에서 새로 붙였다. 필자들은 누아르의 거장 대실 해밋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인 랭보가 무역상으로 활동한 에티오피아 등 작가의 삶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긴 장소들을 찾아 그들이 남긴 체취를 뒤쫓는다. 잡지<피플>과 <머니>의 편집장이었던 랜던 존스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아내와 떠났던 여행이자 그의 소설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와 함께했던 미국 남부 여행을 뒤따른다. 그는 “타락한 땅(Badland, ‘불모지’를 뜻하는 Badlands의 오기)의 휴게소”처럼 잘못 쓴 도로 표지판을 나보코프가 봤다면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피츠제럴드나 케루악, 스타인벡보다 미국을 더 많이 보았고, 더욱이 그가 본 미국은 좁은 뒷길의 미국, 곧 개인적이고 친밀하고 조악하지만 부인할 수 없게 진실한 미국이었다. 우리에게 (…) 미국은 장소가 아니라 도로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데에는 러시아 태생의 소설가가 필요했다.” 우리가 살면서 이 책에 나온 서른여덟 곳을 모두 여행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운 여름날 시원한 집에서 편하게 누워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불가능할 여행을 갈음하는 것을 ‘정신 승리’라고 깎아내릴 순 없으리라.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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