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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회학자가 관찰한 지방대 ‘복학왕’들의 삶

등록 2018-07-12 20:06수정 2018-07-12 20:46

지방대서 10년간 가르친 최종렬 교수
사회적 관심, 청년 담론서도 소외된
지방대생의 삶의 논리 포착해
“지방대생들 가족에서 벗어나야”
복학왕의 사회학-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
최종렬 지음/오월의봄·2만4000원

“교수님이 시키는 거 잘하고 학회장까지 했는데… 취업하게 해달라고 맨날 기도했는데… 빚만 삼천이다. 나 뭐하지?”(<복학왕> 77화) 작가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은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놀면서도 마음속엔 어두운 미래로 불안해하는 지방대생들의 삶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꼽힌다. 이런 지방대생들의 실제 삶의 논리를 만화가 아닌 학문의 언어로 포착해낸 보기 드문 책이 최근 출간됐다.

계명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최종렬 교수는 지난해 2월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이란 논문을 발표해 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진정성을 상실하고 사회적 행위 능력마저 박탈당한 동물, 속물’(김홍중) ‘자기의지를 가지고 자기계발에 힘쓸수록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통치성에 포획되는 줄도 모르고 날뛰는 멍청이’(서동진) 등 기존의 서울 중심의 청년 담론과, 최 교수가 지방대에서 10년 이상 가르치면서 체험한 청년들의 모습은 너무 달랐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그는 이 논문에 쏟아진 관심 자체가 청년 담론에서 소외된 지방대생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보고, 연구를 더 심화시켜 <복학왕의 사회학>을 펴냈다.

그가 여러 인터뷰들을 통해서 본 지방대 재학생들은 성공이나 생존이 아닌 가족의 행복을 가치로 삼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평범한 가정을 꾸려 가족과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을 제일 좋은 삶이라 여긴다.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에 나오는 가사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가 이들의 배경음악. 이들은 가족 밖으로 나가면 무한 경쟁의 불공정한 사회에서 패배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족 안에 머무르려 한다. 수도권에선 세대 갈등 담론이 유행하고,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경계하지만 지방의 상황과는 다르다. 지방에선 가부장적 핵가족 모델이 세대를 이어 잘 작동하고 있다. 부모들은 경제력이 약한 자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세대 연대가 이뤄진다.

기안84 작가의 네이버웹툰 〈복학왕〉의 장면. 네이버웹툰 갈무리
기안84 작가의 네이버웹툰 〈복학왕〉의 장면. 네이버웹툰 갈무리

이를 추구하는 방식은 그가 독특하게 이름 붙인 ‘성찰적 겸연쩍음’이다. 지방대생이기에 해도 잘 안 될 것 같은 일은 시도하지 않으면서, 그 때문에 겸연쩍어하는 모습을 약간의 재치를 섞어 개념화한 것이다. “저는 굉장히 끈기도 없고 포기도 잘하고 현실도피성이 강한 아이인 것 같아요.”(‘정은’)

이런 지방대생이 모인 집단의 행동양식은 ‘적당주의’로 요약된다. 지방대생들은 공부라는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지방대란 공간에서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공동의 삶을 만들어간다. 핵심은 뭐든 ‘설렁설렁’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어울려 있는 상황에서 경쟁한다거나, 혼자서 뭔가에 몰입하는 것은 집단의 유대를 깨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적당주의는 졸업 후에 더 극명히 드러난다. 일부는 일자리를 구할 때 지방에서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사회복지법인, 영어학원, 대학연구소, 시민단체 같은 곳들이 그곳이다. ‘민주’의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지방대생 졸업자는 사회운동마저도 중간 정도로 하는 게 습속에 맞다. 다른 일부는 잠시 적당주의를 접고 성실함을 발휘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대기업 식자재 회사에 특별채용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서울로 올라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보려 시도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방의 적당주의와 반대되는 ‘몰입주의’ 집단 스타일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들어간 세팅에 모든 인지적 정서적 에너지를 쏟아부으라는 규범적 요구를 서로에게 부과하는 몰입주의에 지방에서 온 이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여기에 잘 적응해 서울 강남에 있는 유수의 광고회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뒤에도 끊임없이 스펙을 개발하는 ‘채린’과 같은 이들도 있지만,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높은 주거비 때문에 하루하루를 전망 없이 버티는 생존주의자가 되거나 다시 가족 안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빈약한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의 한계를 가진 ‘가족’과 선후배·동향 사람이라는 ‘유사 가족’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는 지방대생들이 “미적 체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좇아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지?”를 계속 물을 때 가족주의의 언어를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대화의 상대를 가족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로 확장하고, 대화 상대방의 수준을 국가, 세계, 우주로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 강원도 춘천 강원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에 가는 셔틀버스에 오르고 있다. 춘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2년 강원도 춘천 강원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에 가는 셔틀버스에 오르고 있다. 춘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지방대생들이 가족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대구·경북 출신의 유력한 서울 정치인들만 바라보고, 이들이 대기업을 자신들의 지역에 유치시켜줄 것만 기대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지방대생들이 주거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마련해주고, 지방 중소기업의 과도한 노동시간과 저임금, 불안정 고용으로 점철된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제안하는 것이 바로 지방대를 ‘미학적 폴리스’로 만들자는 것. 지방대생들이 학교에서 살며 모든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종합 생활공간이자, 단기적 요구에 맞춘 직업사관학교가 아닌 학문과 대화를 통해 총체적 역량을 강화해주는 곳으로 바꿔가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념해야 할 점은 그가 자신의 지방대생에 대한 분석을 지방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체험한 지방과 다르고, 또는 서울에서도 일부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의 분석은 “일반화될 수 있는 ‘경험적 실재’라기보단 이 책의 연구 목적에 맞게 구성된 ‘분석적 실재’”라고 말한다. 최 교수가 그려내는 모습이 지방대생들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지방대생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그의 작업은 희귀한 만큼 소중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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