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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칸트학회, ‘공인’ ‘정본’ 표현 철회 ‘학회 기획 전집’은 고수하기로

등록 2018-07-10 18:46수정 2018-07-10 21:46

학회, 5일 긴급 총회 열어
백종현 교수 7대 요구안 논의
‘정본’ ‘공인’ 용어 철회하되
‘번역 대표자 출회’는 거부
지난달 4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칸트 전집 1차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번역에 참여한 칸트학회 회원 학자들이 전집 발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학회장 이충진 한성대 교수, 세번째가 책임연구자 최소인 영남대 교수. 사진 한길사 제공
지난달 4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칸트 전집 1차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번역에 참여한 칸트학회 회원 학자들이 전집 발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학회장 이충진 한성대 교수, 세번째가 책임연구자 최소인 영남대 교수. 사진 한길사 제공
한국칸트학회(학회)가 “학회 기획 전집 번역 대표자들은 학회를 탈퇴하라”는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학회와 출판사 한길사가 사용한 ‘정본’ ‘공인’ 표현은 철회하되, 백 교수가 철회를 요구한 ‘한국칸트학회 기획 전집’이란 용어는 고수하기로 했다. 법적 대응을 공언했던 백 교수는 “실망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학회는 지난 5일 서울역 인근에서 회원 4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긴급총회를 열어 아카넷 출판사에서 칸트 전집을 번역해내고 있는 백 교수가 요구한 7가지 사항을 논의했다. 1년에 한번 학술대회와 함께 열리는 정기총회 참석자는 30명 가량이다.

이날 총회에선 이충진 회장(한성대 교수)이 이 사안에 대한 경과를 보고한 뒤, 참석한 회원 중에서 총회 진행을 맡을 의장을 선출했다. 새 의장의 진행에 따라 총회 참석자들은 백 교수의 앞선 5가지 요구사항 각각에 대한 전체 의견을 모은 뒤에 입장문 문안을 만들었다. 백 교수의 6번째 요구사항인 ‘번역자 대표들의 공개사과와 학회 탈퇴’와 7번째 요구사항인 ‘사과 기자회견 개최’ 건은 백 교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이에 대해선 입장문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학회에선 이날 총회에서 만든 결정문을 총회 이후 참석자들에게 보내 수정을 거친 이후, 지난 9일 학회 누리집에 개시했다.

앞서 지난달 12일 백 교수는 학회 기획 칸트 전집 번역자 34명에게 ▲홍보문에서 내용상으로 전혀 맞지 않은 ‘정본’(定本)이라는 표현을 거둘 것, ▲절차상 부당하고 반문명적인 ‘한국칸트학회 공인 칸트전집’이라는 표현을 거둘 것, ▲앞으로는 ‘한길사 판 칸트전집’ 등으로 호칭하고, 이를 한국칸트학회를 대표하는 역서인 양 표출하지 말 것, ▲혹시라도 한국칸트학회의 학술토론회나 공식 학술지에서 ‘한길사 판 칸트전집’에서 사용한 용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등 마치 ‘국정교과서’ 사용 지침 같은 것을 시행하려 하지 말 것, ▲‘가독성’ 운운하면서 ‘한길사 판 칸트전집’ 역자 외 다른 학회 회원의 역서에 대해 독자를 오도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백 교수는 그달 20일에 추가로 ▲지난 6월 4일 한길사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여 망언과 불법적 행위를 한 번역자 대표들은 학회 회원 간에 불화를 야기하고, 과장 광고에 앞장서 학회의 명예 또한 실추시켰으므로 2018년 6월 30일까지 전 회원에게 공개 사과하고, 학회를 스스로 탈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3일 후인 23일엔 재차 ▲한길사와 전집 주도자들은 지난 6월 4일과 동일한 규모의 기자회견장을 6월 30일까지 마련하여 당일의 반윤리적, 불법적 언사를 공개적으로 취소하고, 백종현과 독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백 교수는 이같은 요구 사항이 모두 관철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한겨레> 기고문에서 “관련자들이 공개 사과도 하지 않고, 실추된 백종현의 신뢰도에 대한 회복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행실을 사회 법규에 의해 바로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문 활동임을 위장하여 학계에서 비루하고 책략적인 언동을 서슴지 않는 이들을 방치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학회 설립을 주도했던 백 교수는 1999~2001년 학회 회장을 지난 바 있고, 현재는 학회 고문이다.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과)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과)
이에 백 교수 쪽은 “칸트 학회의 총회 결정문은 사실관계에 기반해 결정하지 않았다. ‘공인’, ‘정본’이라는 말의 책임을 한길사에 돌렸지만, 이를 번역 대표자인 이충진, 최소인 교수가 말했다는 사실은 빠져있다. 분란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서 유감의 뜻을 밝히는 정도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도 잘못이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빠져있다”면서 “형식적 수준에 그친 실망스러운 결정문”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학회가 발표한 입장문 전문.

백종현 회원의 요구 사항에 대한 한국칸트학회의 입장

한국칸트학회는 백종현 회원께서 언론(한겨레신문, 2018.06.23)을 통해서 제기하신 요구 사항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요구사항 1. 홍보문에서 내용상으로 전혀 맞지 않은 ‘정본(定本)’이라는 표현을 거둘 것

요구사항 1에 대한 학회 입장:

‘정본’ 표현은 한길사가 작성하고 배포한 보도자료(6/5)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이에 즉시 한길사에 ‘정본’ 표현을 철회할 것과 차후 사용 금지를 요구하였습니다. 한길사는 홈페이지와 인터넷 서점이나 광고 등에서 그 표현을 모두 삭제하였고 앞으로도 인터넷 서점 등에서 이 표현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계속해서 시정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요구사항 2. 절차상 부당하고 반문명적인 ‘한국칸트학회 공인 칸트전집’이라는 표현을 거둘 것

요구사항 2에 대한 학회 입장:

‘학회가 공인하는’은 기자회견장에서 언급되었던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칸트전집>의 번역이 어느 개개인이 아니라 한국칸트학회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그 점을 한국칸트학회가 인정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공인’이란 표현은 발언자의 본의와 무관하게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인’이란 표현 문제도 ‘정본’ 표현 문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요구사항 3. 앞으로는 ‘한길사 판 칸트전집’ 등으로 호칭하고, 이를 한국칸트학회를 대표하는 역서인 양 표출하지 말 것

요구사항 3에 대한 학회 입장:

현재 출간된 <칸트전집>의 표지에는 ‘한국칸트학회 기획│홍길동 옮김’이 공통적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언론사는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한국칸트학회가 기획 번역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 역시 ‘한국칸트학회 기획 <칸트전집>’을 공식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칸트학회 기획’이라는 표현은 ‘<칸트전집> 번역 사업이 한국칸트학회 주도로 기획되었고 실행되었다’는 사실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 인식은 2013년 총서 사업의 지원 여부를 논의했던 시점부터 2018년 연구사업의 성과가 출간되고 있는 지금까지 모든 회원이 공유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러한 사실 인식이 전제되지 않았더라면 지난 5년 동안 이루어진 모든 번역사업 관련 공식 활동(고문 회의, 확대이사회, 연구지원 계획서 작성, 추진위원회 구성, 연구자 회의, 총회, 학술대회 등)을 예외 없이 한국칸트학회의 이름으로 진행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칸트학회 회칙 제2조에 따르면 학회의 목적은 “칸트 철학 및 칸트와 직간접적인 학문적 영향 관계에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에 관한 공동 연구,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한 한국 철학 정립을 위한 모색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에 있으며, 제3조에서는 이 목적 수행을 위한 주요사업으로 “칸트 철학 관련 문헌 번역 출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회칙에 부응하여 학회의 고유한 목적을 이루고자 학회 이사진을 필두로 학회 회원들이 한국어 <칸트전집> 간행에 매진해 왔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한국칸트학회 기획 <칸트전집>’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볼 때, <칸트전집>과 학회공문에 ‘한국칸트학회 기획’,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요구사항 4. 혹시라도 한국칸트학회의 학술토론회나 공식 학술지에서 ‘한길사 판 칸트전집’에서 사용한 용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등 마치 ‘국정교과서’ 사용 지침 같은 것을 시행하려 하지 말 것

요구사항 4에 대한 학회 입장:

‘전집’ 형태의 번역과 출간을 위해서는 용어의 통일은 불가피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어 <칸트전집> 사업단은 용어조정위원회를 통해 용어 통일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한국칸트학회 학술대회를 통해 두 차례 이상 공개 토론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칸트전집>의 통일성을 위해 최소한으로 선별된 용어들을 ‘반드시 사용해야 할 필수 용어’와 ‘가능한 한 지켜야 할 제안 용어’로 구분하였습니다. ‘제안 용어’는 문맥에 따라 다른 용어 사용이 더 적합한 경우를 감안한 조처입니다. 이 경우, 번역자는 역주에서 다른 용어 선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였습니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에 번역자로 참여한 모든 회원에게는 앞서 언급한 용어 사용지침에 따라 번역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는 당연히 <칸트전집> 번역사업의 범위를 넘지 않습니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에서 사용한 용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 바가 전혀 없으며 펼칠 까닭도 없습니다.

요구사항 5. ‘가독성’ 운운하면서 ‘한길사 판 칸트전집’ 역자 외 다른 학회 회원의 역서에 대해 독자를 오도하지 말 것

요구사항 5에 대한 학회 입장: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이 기존의 번역서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기존 번역서에 비해 ‘가독성’을 높이고자 노력했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있었던 이러한 언급은 학계와 언론계 그리고 일반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준과 범위를 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급에는 기존의 성과들 덕분에 지금과 같은 번역이 가능했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으며 기존의 번역서와 역자를 폄하하거나 독자를 오도할 의도를 전혀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급의 진의와 맥락과는 다소 다르게 전달되어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는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이상은 한국칸트학회 총회(2018년 7월 5일)의 결정 사항임을 확인합니다.

2018년 7월 9일

한국칸트학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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