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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력 안 해서 성공 못했다고요? 정말입니까?

등록 2018-07-05 19:36수정 2018-07-05 19:47

미국 유명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
운이 성공에 미치는 절대적 중요성
공공투자 확대 위해 부가소비세 제안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인 나라 만들자”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시한부 인생인 고교 화학교사가 가족을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다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2008~2013). 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그전까지는 평범한 중년의 조연배우에 불과했다. 그가 주연 물망에 올랐을 때, 영화사 간부들은 한 번도 주연을 맡아본 적 없는 그를 못 미더워했다. 그래서 다른 배우 두 명에게 주연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들은 출연을 고사했고, 담당 프로듀서가 크랜스턴을 다시 강력히 추천했다. 만일 이런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에미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명배우 크랜스턴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성공을 하기 위해서 노력과 운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코넬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로버트 프랭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와 함께 대학 교과서인 <경제학>을 쓰고, 10년 동안 <뉴욕타임스> 칼럼을 기고하는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다. 그가 200쪽 남짓한 짧은 분량으로 쓴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는 삶에서 운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수많은 사례와 실험 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입증한다.

그는 먼저 미국이나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브란코 밀라노비치는 “세계적으로 개인 간에 나타나는 소득 격차의 온갖 문제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와 그 국가 내부의 소득 분배, 이 두 요인만으로 거의 절반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어떤 부모를 만나냐는 것. 부모는 자본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지능이나 경쟁심을 포함한 유전자를 자녀에게 물려준다. 여기에 학대하지 않고, 적절한 애정을 쏟아주며, 충분한 교육을 제공해줄 경제력을 갖춘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성공에는 절반쯤 다다른 것이다.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는 미국에서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 사이의 상관관계가 0.5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부모와 자식의 키 사이에 나타나는 연관성의 크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쟁자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능력이 아니라 운이 승리를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선두 그룹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은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흔히들 ‘운이나 뒷배가 작용하지 않는, 순수하게 노력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스포츠에도 운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남녀 100m, 100m 허들, 멀리뛰기, 삼단뛰기 등 8개 육상 종목의 세계신기록 중에 역풍이 불 때 작성된 기록은 없었고 모두 순풍이나 무풍일 때였다.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연을 맡기 전까지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평범한 중년배우에 불과했지만, 운 좋게 이 작품의 주연을 맡은 뒤론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에미상을 네 차례나 받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 제의를 받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크랜스턴이 코넌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 출처 브라이언 크랜스턴 트위터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연을 맡기 전까지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평범한 중년배우에 불과했지만, 운 좋게 이 작품의 주연을 맡은 뒤론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에미상을 네 차례나 받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 제의를 받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크랜스턴이 코넌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 출처 브라이언 크랜스턴 트위터

경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맬컴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잘 보여줬듯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전 세계에서 50명 정도의 또래만 누릴 수 있었던 프로그래밍 환경에서 자랐다. 여기에 아이비엠(IBM)이 운영체제의 소유권을 그가 갖도록 허락하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등 수많은 우연들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거부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순수하게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 과잉확신 편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도, 자신의 노력이라는 요소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400년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 그저 그런 작품이었지만, 1911년 도난 사건을 계기로 유명해지기 시작해 급기야 서양 문화를 대표하는 미술품이 됐다. 미술학자들이 <모나리자>가 왜 대단한 작품인지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물론 ‘운이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을 자꾸 들으면, 힘이 빠져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경쟁에도 무작정 뛰어들어 삶을 낭비할 위험성이 크다. 소년 시절 야구에 몰두하던 지은이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연맹에 등록된 고교 선수는 45만명에 이르지만, 이 중 30개 메이저리그 구단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25명뿐인 야구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을 지금 그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에 이런 우연이 성공에 더 중요해진 것은 지난 수십년간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승자 독식 시장’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과 운송 기술의 발달로 지리적으로 고립된 시장을 차지하던 기업과 개인들은 이제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게 됐다.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과 개인 몇몇만 살아남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세금은 지난 수십년간 줄어들어, 1979년 50~90%였던 30개 주요 국가들의 최고한계세율이 2002년에는 25~5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때문에 공교육이나 공공의료 등 공공투자가 축소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운을 무시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권 로비를 통해 증세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의 지은이 로버트 프랭크. 출처 위키미디어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의 지은이 로버트 프랭크. 출처 위키미디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은이가 내놓은 비책이 있다. 바로 누진소비세. 그는 누진소득세를 폐기하는 대신 가파른 누진소비세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과도한 소비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게 되면, 큰 집, 고급 자동차, 호화로운 결혼식처럼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와 경쟁 때문에 하게 되는 소비는 줄고 세수와 저축,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많은 사람이 가진 재능과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학교나 병원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재건하고 확충하는 데 쓰자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흥미로운 일화 하나. 지은이는 누진소비세를 다룬 논문을 발표한 이후 편지를 한 통 받는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그는 지은이의 “정부가 더 많은 돈을 거두고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진소비세야말로 효과적인 세입 창출원이라며,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누진소비세로 세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자신의 논문을 동봉했다고 한다. 프리드먼을 떠받드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중에 이 책을 읽고 나름의 반박을 해낼 만한 실력과 성실함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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