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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멀쩡한 대표직함, 유치찬란 작당질…이분들 왜 이러셔?

등록 2018-07-01 17:57수정 2018-07-01 20:50

‘읽었나뷰 배틀’ 5인의 출판사 대표

안희곤·강성민·김홍민·정은숙·한성봉
내로라는 출판사 대표들 페북서 배틀
한달 한차례 같은 책 5인5색 서평 게시

“뭔지 모른 채 설마 제안 덥석 수락”
“글은 멀쩡한데 만나서 보면 이상해”
“댓글 품앗이…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최고예요·웃겨요는 가중치 줘야죠”

유럽책방 다녀와 탐방기 딱 10권 찍고
X북·피츠제럴드 등 ‘디자인 통일책’도
국제도서전에선 죽맞아 무보수 봉사

경쟁관계인데 왜 이리 끈끈할까
“그냥 미친 사람들 같아요”
“서로 대등하니 꿀릴 게 없잖아요”
지난 5월부터 매달 ‘읽었나뷰 배틀’을 벌이고 있는 출판사 대표들이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닭다리 배틀’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안희곤(사월의책), 김홍민(북스피어), 정은숙(마음산책), 강성민(글항아리),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5월부터 매달 ‘읽었나뷰 배틀’을 벌이고 있는 출판사 대표들이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닭다리 배틀’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안희곤(사월의책), 김홍민(북스피어), 정은숙(마음산책), 강성민(글항아리),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제가 처음에 같이 하자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설마 이 사람들이 하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제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한 거 같은데도 덥석 하자고들 하더라고요.”(김홍민) “무슨 소리, 배틀이 유치해지지 않기 위해서 제가 들어온 거에요.”(한성봉) “이 사람들이 글은 멀쩡한데 만나서 보면 이상해요.”(정은숙)

말을 시작하자마자 벌써 티격태격이다. 2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5명의 출판사 대표들은 인터뷰 중에도 끊임없이 서로를 칭찬하고 ‘디스’하고 웃겼다. 지난 5월부터 한 권의 책을 두고 리뷰를 써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리뷰를 선정하는 ‘읽었나뷰 배틀’을 시작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안희곤 사월의 책 대표,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다섯 사람을 만났다.

묻고 싶었다. 사업이란 본질상 경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회사 대표들이 왜 이렇게 같이 모여 놀고 함께 일을 벌이는 건지. 세상에 많고 많은 업종이 있는데, 왜 유독 출판계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들이 그동안 함께 한 기획들은 빠짐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홍민·정은숙 대표는 지난해 초에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과 유럽책방 탐방을 다녀와서 <우연히, 서점>이란 책을 비매품으로 딱 10권만 만들었다. 지난해 5월에는 김홍민·정은숙 대표가 은행나무 출판사와 함께 책의 표지를 가린 ‘엑스(X)북’을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해 6월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에세이·편지 등 3권의 책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함께 발간한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급기야 지난 5월부터 5명의 대표는 서평 대결을 벌여 출판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명 ‘읽었나뷰 배틀’.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재미있는 일 기획하기로는 출판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김홍민 대표. 김 대표 말로는,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신변잡기 글은 재미있게 잘 쓰는 대표들이 막상 자기 출판사에서 낸 책을 소개할 때면 뻣뻣해져서 재미없는 글을 쓰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다른 출판사의 책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것.

배틀 제안자인 김홍민 대표가 첫 번째 리뷰 대상 책을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삼귀>로 정했다. 지난 5월14일 5명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틀을 예고한 뒤, 3일 후인 17일 오전 10시에 일제히 자신의 페이스북에 리뷰를 올렸다. 김홍민 대표는 자기 출판사 책이라서 그런지 1등의 욕심을 버리고 리뷰 배틀을 시작하게 되는 설렘을 담았고, 정은숙 대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개사해 배틀에 참여한 걸 뒤늦게 후회하면서 ‘좋아요'를 눌러주길 간청했다. 강성민 대표는 자신이 요괴를 만나는 괴이한 경험을 했다는 설정의 짧은 소설 같은 리뷰를, 국문학과 교수 출신인 한성봉 대표는 문학 비평 같은 글을 썼다. 안희곤 대표는 인문사회과학서들을 많이 내온 사람답게 괴담의 사회적 기능을 짚어냈다. “저는 좋아요 많이 받으려고 페이스북 친구 관리를 좀 했어요(웃음). 3일 정도 다른 사람들 페이스북 들어가서 좋아요 눌러주고 정성껏 댓글도 달아주고. 그러면 사람들이 제 거에도 반응을 보여줄 거 같아서요. 그러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니까요.”(강성민)

결과는? 72시간 동안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사람은 안희곤(389개) 대표였고, 그 뒤를 강성민(231개), 김홍민(205개), 정은숙(165개), 한성봉(156개) 대표가 이었다. 대체로 각자의 페이스북 친구가 많은 사람 순으로 순위가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페이스북에선 배틀 시작 전부터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같이 놀자는 의미로 하는 게임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공정과 정의에 대한 의식이 강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블로그를 따로 만들어서 이름을 가린 채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같은 제안을 하더라고요. 어쨌든 저희도 룰을 좀 바꿔서 앞으론 ‘좋아요’, ‘최고예요’, ‘웃겨요’ 같은 반응에 각각 가중치를 다르게 주기로 했어요. 1등이 아니라 3등한테 다음 책을 결정할 권한을 주고요.”(김홍민) “고마운 일이죠. 장기판에 훈수 두는 사람이 없으면 재미없잖아요.”(강성민)

읽었나뷰 배틀은 실제로 책 판매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미유키 작가의 가격과 분량이 같은 다른 소설의 보름간 판매량과 비교했을 때 2배 정도가 됐다. ‘읽었나뷰 배틀’은 매달 진행된다. 7월 배틀은 1등을 한 안희곤 대표가 곧 낼 신간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놓고 벌어진다. 김홍민 대표는 이런 리뷰 배틀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다른 출판사 대표들끼리, 독자들끼리 말이다.

왼쪽부터 한성봉(동아시아), 강성민(글항아리), 정은숙(마음산책), 김홍민(북스피어), 안희곤(사월의 책) 출판사 대표들이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왼쪽부터 한성봉(동아시아), 강성민(글항아리), 정은숙(마음산책), 김홍민(북스피어), 안희곤(사월의 책) 출판사 대표들이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출판사들은 왜 ‘작당’하여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2008년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역사비평사와 함께 디자인을 통일해 낸 적이 있어요. 출판사가 서로 취향이 다르니 힘들긴 했지만 같이 내니까 독자들이 주목하고 책 판매에도 효과가 있더라고요. 등산을 하는 것처럼 올라가기는 힘들지만 정상에 가면 좋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다음부터 다른 출판사들과 같이할 생각을 하게 된 거죠.”(김홍민) “모든 책은 독점 상품이에요. 출판사들이 서로 색깔과 편집 방향이 달라요. 여러 출판사에 같은 원고를 주더라도, 편집을 거치고 나면 서로 다른 책이 나올 거에요. 우리가 만드는 책이 전 세계에 그 책 하나밖에 없으니 남 책이 잘 팔리는 거에 질투를 안 하는 거예요.”(안희곤) “1970~90년대에 갈 곳 없는 운동권 사람들이 출판사를 많이 차렸잖아요. 출판계 사람들이 원래부터 서로 선후배고 다 아는 사이니 동지 의식이 쉽게 생긴 것 같아요.”(한성봉)

출판사 대표들끼리 막역한 사이인 것은 다른 나라 출판인들도 신기해할 정도. 한국·중국·홍콩·대만·일본·오키나와 등 6개 지역의 출판인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여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것도 한국 출판인들이다. “중국 쪽 출판인들은 사실상 공무원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표현을 안하고, 일본 출판인들은 엘리트들이 많으니 머리 많이 굴리고 예의 바르죠. 한국 출판인들은 그냥 미친 사람들 같아요(웃음). 다른 나라 출판인들은 한국 출판인들이 왜 이렇게 스스럼없이 친하냐고 신기해해요. 우리나라는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소유자가 직접 출판을 하는 독립 출판이에요. 서로 대등하니까 꿀릴 게 없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거죠.”(안희곤)

그렇다고 이들의 친분이나 기획력이 자기들 출판사 안에서만 맴도는 것은 아니다. 정은숙 대표는 올해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출판사 일은 거의 돌보지 못하면서도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강성민 대표는 ‘함께 읽기’ 분과장, 김홍민 대표는 언론 분과장을 맡아 ‘심야책방’ 행사와 서울국제도서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또 어떤 기획을 내놓을까? 문학이 중심인 북스피어나 마음산책에 비해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인 글항아리, 사월의책,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하기 쉽지 않다. “홍민이가 인문서를 출판해야 이벤트도 같이 하고 그럴텐데 말이야. 그럴 수가 없으니 우리끼리 즐거운 마케팅 방법을 찾아보자. ‘베개로 삼으면 가장 편한 책’을 뽑는 거야. 아니면 ‘남한테 버리고 싶은 책’, ‘빼앗아오고 싶은 책’. 어때?”(안희곤) “한 손으로 벽돌책 오래 들고 있기나(글항아리는 두꺼운 벽돌책을 많이 내기로 유명하다) ‘도대체 왜 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 ‘왜 잘 팔리는지 알 수 없는 책’을 뽑아서 상을 주는 건 어때요?(웃음)”(강성민)

김홍민 대표가 다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길드 배틀을 하면 어떨까요. 우리 다섯명하고 기자 다섯명하고 각각 팀을 꾸려서 책 리뷰 배틀을 붙는 거야. 길거리 농구대회처럼.”(김홍민) “그거 좋네요. 월드컵처럼 여러 팀을 꾸려서 예선을 치르고 토너먼트를 하는 거죠.”(정은숙) “홍민이 너는 어떻게 쿡 찌르면 아이디어가 툭 나오냐.”(안희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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