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을유문화사·1만8900원
브라이언 페이건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일 게다. 영국 출신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인 그는 지금까지 무려 46권의 책을 냈는데, 그 상당수가 베스트셀러 대중 교양서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전문적 깊이와 흥미로운 사례들로 풍부한 그의 저서 중 국내에 소개된 번역서만도 <바다의 습격>(2017), <위대한 공존>(2016), <고대 문명의 이해>(2015), <인류의 대항해>(2014),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2007) 등 14종이나 된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수산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적이 있으며, 그 한 해 전에는 <한국방송>(KBS)의 5부작 문명 다큐멘터리 <슈퍼 피쉬>에 출연하기도 했다.
페이건의 새 책 <피싱>은 원서 제목 그대로 ‘고기잡이-바다가 어떻게 문명을 먹여살렸나’란 질문을 고고학·인류학·해양생태학·지리학·역사학 등 방대한 분야의 학문적 성과와 해박한 고대문명, 항해술, 선박건조술 지식으로 탐구한 책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칼루사족이 얕은 강 어귀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메랄드 클라크 작품. 을유문화사 제공
1820년대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연안의 어장에서 일꾼들이 물고기를 보존 처리하는 모습. G.브라마티 작품. 을유문화사 제공
지난해 초판이 나왔지만, 80살을 넘긴 노학자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머릿속에 푸른 바다와 역동적인 어업, 바다의 풍요가 낳은 문명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페이건은 학자이자 노련한 뱃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친구가 어부였던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작은 돛단배를 타며 유람항해술을 익혔고, 뒷날 위성항법장치(GPS) 없이 영국에서 미국까지 대서양을 횡단한 적도 있다.
선사시대 고대 인류가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수렵, 채집, 고기잡이가 전부였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 수렵과 채집은 각각 목축과 농경으로 완전히 바뀌었지만, 고기잡이는 오늘날까지도 200만년 넘게 바다 식량을 얻는 수단으로 위상을 잃지 않고 있다. 농경과 목축이 인간의 정착 생활을 이끌었다면, 고기잡이는 이동하는 삶을 자극했다. “고기잡이는 교역, 이주, 탐사를 이끈 기술인 배를 발달시킨 주된 원동력이었다. 사람들은 4만5000년 전까지 동남아시아 지대까지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가 1만5000년 뒤에는 태평양 남서부의 비스마르크 제도까지 진출했다.” 물고기는 건조하거나 염장 처리를 하면 가벼우면서도 영양분이 풍부하며 비교적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식품이 됐다. 교역자, 탐험가, 정복자들에겐 더없이 이상적인 식량원이었던 셈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추마시족이 전통 카누인 토몰을 연안으로 나르는 모습, 윌리엄 랭던 킹의 1948년작 석판화. 을유문화사 제공
19세기말 발트해 연안 한어장의 한 청어시장 풍경을 묘사한 목판화. 검열관이 통에 도장을 찍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을유문화사 제공
지은이는 고기잡이가 고대문명의 발달과 권력층의 통치질서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했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기원전 2686년께 이집트 고왕국 시대 어부들은 메기·농어·숭어 등 적어도 23종의 물고기를 잡았는데, 파라오의 서기관을 맡았던 이의 무덤에서 서기들이 잡은 물고기를 기록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됐다. 물고기는 파라오의 피라미드와 궁궐, 신전 건축에 동원되거나 귀족의 밭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에게 줄 유용한 배급 식량이었다.
1880년대 캐나다 동부 그랜드뱅크에서 어민들이 소형어선을 타고 대구를 잡는 모습. M.J.번스 작품. 을유문화사 제공
나일강에서 후릿그물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빚은 고유물. 고대 이집트 제11왕조 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됐다. 을유문화사 제공
지중해에서 난 풍부한 해산물은 고대 지중해 문명을 살찌웠다. 고대 그리스인은 물고기를 탐닉했다. “로마 제국에서 부유층은 흥청망청 연회를 벌여 1인당 3㎏의 숭어를 먹어댔지만, 물고기의 진가는 도시 시장과 군대 식당에서 발휘됐다. 제국이 전성기일 때는 고등어 같은 하급 어종이 선원이나 군인의 일반 식사메뉴였다.”
일찍부터 벼농사와 교역이 발달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고기잡이는 무시할 수 없는 풍요의 원천이었다. 앙코르 문명을 꽃피웠던 톤레사프 호수(오늘날 캄보디아 중부) 주변은 홍수로 범람하면 훌륭한 물고기 번식장이 됐다. 12세기 초 크메르 왕국의 수라야바르만 2세는 세계 최대의 힌두교 성전 앙코르 와트의 건설을 명했는데, “톤레사프의 풍요로운 어장을 통해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이 공급되지 않았다면 완성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지은이는 중국과 일본,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 등 세계 전역을 훑으며 어업과 문명의 관계를 재밌는 역사 이야기와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보여준다.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물을 튀기는 식으로 겁을 주어 초호에 사는 물고기를 대형 후릿그물 안으로 몰아넣는 피지인들. 1973년 작자미상. 을유문화사 제공
이라크 서부 지역 습지대에서 창으로 고기를 잡는 아랍인들. 윌프레드 세시저(1910~2003) 촬영. 을유문화사 제공
페이건은 그러나 ‘풍요로움의 종말’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19세기 들어 기술 발달로 고기잡이가 산업활동으로 바뀐 데다, 싹쓸이에 가까운 남획과 기후변화 등 환경재앙까지 겹치면서 많은 어종이 멸종 위기에 몰린 까닭이다. “이전까지 아주 풍요로웠던 바다를 영영 사막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속가능한 어업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만큼 장기적 사고가 필요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편이 낫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