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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심-주변’ 넘어 경계 가로지르는 세계사

등록 2018-06-28 19:40수정 2018-06-28 20:04

미-독 명문 출판사 대형기획
초국적 역사 집대성한 ‘세계사’
‘연결’로 세계사 서술 한계 넘어서
프랑스혁명사의 ‘정전’도 출간
1870~1945,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책임 편집 에밀리 S. 로젠버그, 조행복 이순호 옮김/민음사·5만8000원

1945 이후, 서로 의존하는 세계
책임 편집 이리에 아키라, 이동기 조행복 전지현 옮김/민음사·5만3000원

프랑스혁명사
알베르 소불 지음, 최갑수 옮김/교양인·3만8000원

국가사, 미시사, 지성사, 개인사…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역사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협소하고 치우쳐진 영역만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마음 한 켠 들면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계사를 읽고 싶은 갈증이 느껴질 때가 있지는 않는가? 게다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하다면, 답을 구하기 위해 참고할 거의 유일한 전거는 세계사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런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만한 제대로 된 세계사책을 국내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여름을 맞아 나온 이 묵직한 책들이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 듯 하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출판부와 독일의 250년 전통 체하베크(C.H.Beck)출판사가 함께 내는 <세계사> 시리즈는 각 권이 1000쪽에 이르는 전 6권짜리 방대한 기획이다. 지난 2012년부터 출간을 시작해 아직 독어판 2권, 영어판 1, 2권이 나오지 않은, 현재진행 중인 따끈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기획과 집필, 편집을 미국과 독일의 역사학자들이 나누어 맡았다. 미국 쪽 총괄편집자인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학 명예교수는 국가를 초월한 역사 연구인 ‘초국적 역사'의 개척자이고, 독일 쪽 총괄편집자 위르겐 오스터함멜 콘스탄츠대학 교수 또한 세계화 역사의 권위자다. ‘초국적 역사'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적 역사학에 대한 반성으로 20여년 전에 등장한 최신의 역사 연구 흐름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1차분을 출간한 두 권은 시리즈 중 가장 최근 시기인 근현대사를 다룬다. 5권 <1870~1945,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와 6권 <1945 이후, 서로 의존하는 세계>라는 제목부터 역사를 국가 단위를 넘어서 관계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5권의 서문에서 책임편집자 에밀리 로젠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이 시기의 역동적 긴장을 다루면서 단일한 역사의 동력에 관한 주장을 피한다. 예를 들면 국가가 세계사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거나 경제적 동인이 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근본원리라거나 유럽이 역사적 변화의 추동력이라는 가정은 없다. (…) 대신 최근의 연구 성과를 따라 연속적이면서도 균일하지 않은 것, 일방적인 지배적 힘이 변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교류와 관계성 속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 그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연결과 상호작용을 핵심 주제로 삼은 이유는 그동안의 세계사 서술의 한계를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세계사를 주변과 중심으로 위계화하는 데서 오는 문제점을 피하면서도, 국가와 지역 간의 불균등한 권력 관계에서 오는 파괴적이면서도 역설적인 결과들을 다룰 수 있는 관점을 얻었다. 또한 인종과 민족, 종교와 문화, 국민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가로질러서 다원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세계를 다룸으로, 전쟁이나 정치 같은 국가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세계사들과 차별화했다. 그동안 세계사 서술에서 소홀히 여겨져온 이주와 젠더, 생태 문제를 서술의 중심부에 위치시킨 점도 달라진 시대를 사는 독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듯 하다.

1870년부터 1945년까지 다루는 5권은 근대국가가 탄생하고 제국으로 성장하는 국가와 여기에 대항하는 이들의 노력을 서술한 뒤에, 사람과 상품, 사상, 기술이 이동하는 모습을 상세히 다룬다.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6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냉전, 미국식 개방경제체제의 확대와 그로 인한 문제점, 환경 문제의 대두, 여성 문제, 문화의 세계화를 그려낸다. 민음사는 내년에 3권 <1350~1750, 세계 제국과 바다>와 4권 <1750~1870, 현대 세계로 가는 길>을 내고, 내후년에 1권 <600 이전, 초기문명>과 2권 <600~1350, 농경민과 유목민의 도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 번역 출간된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혁명사>는 프랑스혁명사 책이나 연구라면 피해갈 수 없는 ‘정전’의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다. 소불은 1967년부터 당시 소르본대학교(현 파리 제1대학교)에서 프랑스혁명 연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사 강좌’ 주임 교수를 맡은 학자였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이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해볼 수 있다. 소불은 1962년 프랑스혁명의 정통적 해석인 ‘부르주아 혁명관’의 관점에서 쓴 <프랑스혁명사 개설>을 출간했는데, 1982년 출판사로부터 이 책의 개정 작업에 착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4개월뒤 갑작스레 사망해, 그의 제자들이 소불이 고친 서문과 그의 논문 두편을 부록으로 실어 개정판을 출간했다. 번역자인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을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거시적 전망 속에서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농촌 농민층과 도시의 민중층의 지원과 견제를 받으면서 어떻게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와 근대 국가를 빚어내는지를 웅대한 규모로 비할 데 없이 선명하게 그려낸다.”

소불이 자신의 책을 보완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그와 그가 대표하는 ‘부르주아 혁명관’이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수정주의’의 거센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퓌레 등의 수정주의자들은 부르주아 혁명이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이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연결되는 역사적 전망을 차단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이해관계에 봉사한” 이들이라고 최 교수는 지적한다. 특히 소불은 반독일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일로 친독일 ‘비시 정부’에 의해 교사직에서 쫓겨난 뒤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해 지하 활동에 가담했고, 68혁명 이후에도 공산당 당적을 유지했다. 이런 이력이 수정주의자들이 공격에 나설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여기서 문제는 동일한 결과를 이끄는 더 빠른 길이냐 아니면 더 느린 길이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창설이냐 아니면 구사회의 피상적인 수정이냐 사이에서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의 한 대목은 공산주의적 신념을 가진, 68혁명을 겪은 프랑스 지식인인 소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가 되살려내는 프랑스혁명의 ‘혁명성’은 신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대항할 좋은 무기가 될 듯 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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